문화

[성화 감상] 베드로 장모의 치유/정안나 마리아 수녀

정안나 마리아 수녀ㆍ대구 포교 성베네딕또 수녀회
입력일 2021-03-08 13:54:15 수정일 2021-03-08 13:54:15 발행일 1973-11-04 제 889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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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좌위 예수는 교회의 거룩함 표시
치유된 자의 눈빛은 감사 표정 역연
다른 성화보다 베드로가 젊어 보여
베드로가 서있는 바위는 그의 직위 말해줘
○…(마테오 8ㆍ14-17ㆍ루까 4ㆍ38-41 마르꼬 1ㆍ29-34) 색채소개=이 성화는 대단히 밝고 선이 선명하것. 그리스도가 입고 있는 속옷의 팔과 치마자락은 연한 푸른색이고 그 위에 걸친 만또는 선만이 뚜렷하게 짙은 고동색으로 그어졌고 그 외에는 연한 고동색으로 칠해졌다. 옥좌와 그리스도의 발이 디디고 있는 방석과 부인의 속옷과 또 위에 있는 집들은 별 차이가 없는 짙고 혹은 주황색으로 그려졌으며, 지붕의 기와들은 검정색깔로 선명하게 그어져있다. 머리부터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린 부인의 수건과 그들이 디디고 있는 땅과 베드로가 입고 있는 옷과 또 그 뒤에 서있는 자의 만또 색깔은 대단히 짙은 푸른색이다. 집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색도 동일한 푸른색이다. 그러나 그들이 있는 집안은 마치 동굴 안처럼 뚜렷이 경계선이 머리위로 그어졌고 동굴안의 벽 색깔은 붉은 피색이다. (역자주)…○

『예수께서는 그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셨다. 때마침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병으로 앓아 누워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부인을 고쳐주기를 예수께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그 부인 곁에 서서 열이 떨어지라고 명령하시자 열이 내리고 그 부인은 곧 일어나서 사람들의 시중을 들었다』고 루까는 말하며, 마르꼬는『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셔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고 덧붙여 말하고 있다.

이 성화에서 대단히 드물고도 꿈만 같은 이 사건을 복음이야기의 평범한 과정이 잘 나타내 보이고 있다. 예술가는 그가 읽고 들은 것만을 그릴려고 하지 않고 동시에 그 의미를 깊게 박아주려고 하였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어떤 거실을 보는 듯 하는데 그 방은 집이 아니고 붉은 색깔의 어둠침침한 동굴 속이다. 그 뒤와 위에 붉고 푸르고 노란집들이 자유롭게 있는데 그 지붕 끝들은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성화 가장자리까지 –가파르나움 도시-닫고 있다. 왼편에는 호화찬란한 옥좌가 있는데 거기에는 언제나 통치자의 의상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앉아계신다. 그의 발은 가벼운 산달을 신은 채 대단히 커다란 방석위에 놓여졌다. 그의 머리위에는 희랍문자로 새겨진 그의 이름「예수 그리스도」란 인장이 찍혀져있다. 그분 앞에는 깨끗이 닦여졌으나 고르지 못한 푸른 색깔의 땅이 있고 그 위에는 모든 것을 초월할 만큼 위대하신 분이 앉아계시는 앞에 조그만 하고 빈약한, 그리고 머리와 가슴과 어깨에 푸른 수건을 두르고 붉은 옷을 입은 부인이 서있다. 땅이 우뚝 솟은 그곳에는 세 명의 남자-베드로와 그의 형제인 안드레아가 다른 한사람 옆에-가 서있다.

이 성화에서는 베드로가 다른 성화에서보다 젊게 보인다. 그는 오른손으로 도움을 청하며 동시에 그의 청이 들어 허락함을 받은데 대한 감사와 경이에 찬 표정을 짓고 있다.

기적이 벌써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선 부인은 이제 아프지 않다. 즉 그녀는 완쾌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고 계시나? 마르꼬가 이야기 하는 대로 그의 오른손으로 맥박을 쥐고 있듯이 부인의 왼손을 잡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의사의 태도인가? 그보다 사랑하는 자의 태도가 아닐까? 그는 부인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고 있다. 그 부인의 조그만 발이 옥좌의 곁을 떠나고 있다. 움직여지고 있는 오른손과 앞으로 고개를 숙인 그녀의 머리는 이미 다시 낫게 됨에 대한 겸손한 감사와 치유의 경이를 말해주고 있다. 예술가가「베드로의 집」안에 나라의 통치자와 부왕으로서 교회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를 가르키고 있고 성전에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서 그의 장모를 낫게 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 모험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다음 여러 가지의 간소한 장면의 이해키 어려운 바들을 설명하고 있다. 베드로가 다른 이들과 함께 서있는 바위는 그의 직위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울려퍼지는 듯한 말소리를 듣고 있는 중에 옥좌에 앉아있는 부인의 다정한 사이에서 마치『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물로 씻는 예식과 말씀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몸을 바치셨다. 이는 교회가 어떤 흠도 없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게 하시려는 것이다』라는 에페소서(5장 25~27절)의 귀절을 연상케 한다. 왜 복음작가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취급된 사건들이 명상가에게는 성화 전체 면을 차지할 만큼 중요하게 여겨졌고 또 그가 여기서 그리스도를 옥좌에 높이 앉히신 분으로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가 베드로의 집에서 있은 그의 장모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에서 의미를 제시했듯이 교회를 세우는 통치적 행위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는 성서의 페이지에서 언제나 새롭게 영원한 복음을 찾아내고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단지 그림으로만 그리려고 하지 않고 지속되는 지도상(指導像)과 모범상을 제시하는 것을 바로 그의 과제로 보았다.

정안나 마리아 수녀ㆍ대구 포교 성베네딕또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