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화제] 국내최초 은행강도 권오석씨 출소 무기수 참회록 펴내

김기태 기자
입력일 2020-11-24 11:35:00 수정일 2020-11-24 11:35:00 발행일 1989-10-29 제 1677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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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못속여 범행 자백
신앙생활로 회개·보속
20여 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강도 살인사건으로 연일 전국을 떠들썩케한 주인공 권오석씨 (52ㆍ보니파시오) 가 지난 1월 출소, 신앙고백적인 참회록을 3권의 책으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 권오석씨는 1966년 12월일 오후 4시경 상업은행 영등포지점에 공범 2명과 함께 침입, 현금ㆍ수표 등 1백20만원어치의 금품 (현시가 5천만원 상당) 을 강탈, 도주하다 현장에서 경찰관 1명을 개머리판 없는 카빈소총으로 사살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은행강도 사건은 처음인 까닭에 매스컴들은 연일 대서특필하면서 이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더욱이 백주 대낮에 서부 활극화 같은 드릴을 연출한 범인들이 증거물 하나 남기지 않고 종적을 감춰버려 사건이 「완전범죄」로 치닫자 수사상황을 지켜보던 시민들의 관심은 날로 더해만 갔다. 「녹색 코로나를 잡아라」 란 별명이 붙은 이 사건에 투입된 경찰력은 연인원 2만명, 수사비 1천만원(현시가 2억원 상당)으로 진기록을 세우기까지 했으며, 연행된 용의자만도 5백80명에 달하는 대사건이었다.

그러나 완전범죄는 없는 것이다. 사건 발생 1년8개월만인 68년 8월 1일 「영구미제1호」인 이 사건은 주범 권오석(사건당시 29세)과 공범인 그의 동생 권오삼(당시 19세), 그리고 6촌 동생 권오철(당시 18세) 등이 붙잡히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권오석씨의 계모 정분덕씨(72)의 「밀고」로 체포된 이들 중 주범 권오석씨는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로, 그리고 친동생 권오삼은 단기 5년~장기 7년을 받고 복역 중 옥중에서 자살했다. 6촌 동생 권오삼은 1심에서 7년, 2심에서 5년을 선고 받았고, 현역사병으로 복무하면서 칼빈소총을 빌려준 권씨의 매부 오영문도 군법회의에 회부돼 3년6개월의 징역선고를 받았다.

체포된 후 권오석씨는 증거가 없고 산업은행 영등포지점 행원들의 대질심문에서 「범인의 인상착의와 다르다」는 진술에 힘입어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권씨는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모든 것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목격자조차 범인이 아니라고 했지만 인간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만은 속일 수 없더군요, 하느님을 받아들일 때까지가 참으로 어려웠지, 일단 받아들이니까 사형을 당한다 하더라도 두려움이 없더군요』

권씨에게 신앙을 전파한 이는 현재 서울 종교음악연구소에 있는 고중렬씨 (베네딕또ㆍ사형폐지협의회운영위원) 이다. 당시 서울 구치소 교도관으로 근무하던 고씨는 권씨에게 매일 찾아가 「가톨릭시보」 (현 가톨릭신문) 를 비롯한 신앙서적을 넣어주며 기도를 해주었다.

『계모와 고모가 개과천선보다는 현상금 1백만원 때문에 「밀고」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척 아파 신앙을 가질 여유가 없었으나 대부님 (고중렬씨)의 성의에 탄복해 신앙을 갖게 됐습니다』

권씨는 68년 12월 현 성북본당주임 양흥 신부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

권씨가 무기로 감형된 것은 부인 장정자씨(49ㆍ데례사)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권씨가 붙잡히자 원래 부인은 떠나버렸고, 「내연의 처」였던 장씨가 구명운동에 발 벗고 나선 것. 장씨는 황성수 변호사를 찾아가 『눈이라도 팔아서 비용을 대겠다』며 변호사를 간청, 황변호사의 거의 무료 변론으로 무기수로 감형됐다.

옥중에서 열심한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회개와 보속의 길을 걷던 권씨는 오랫동안 「독수공방」하며 시부모를 모셔온 장씨와 77년 노기남 대주교 주례로 옥중에서 혼인성사를 받았다. 현재 슬하에는 23세 된 딸이 하나있다.

수감된 지 21년만인 지난 1월 27일 만기를 약 4개월 앞두고 김해교도소를 출소한 권씨는 제일먼저 고 문학 기 순경 집을 찾았으나 이사가고 없어 진한 허탈감을 느꼈다. 『문 순경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로 모시고 효도 하려했는데…』 말끝을 흐린 권씨의 눈에는 이슬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다음 찾은 사람이 계모 정분덕씨. 그의 저서 「보니파시오의 회심1」의 머릿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계모는 저를 처음 보는 순간 안색이 하얗게 변했으며 제가 인사를 해도 누군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죽을 줄만 알았던 제가 복수라도 하기위해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무이요 우리 지난 것 무도 잊어버립시다」하며 큰절을 하자 계모는 「고맙다 오석아,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라」며 내손을 꼭 잡았습니다』저는 계모에게 말했습니다. 『옛날의 오석이는 죽었고 새로 태어난 예수님의 아들이라고…』

김기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