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본 남단의 외로운섬「고오쯔시마」에 유배되어 신앙과 정절의 외로운 생을 마쳤던 한국 여인「오다 줄리아」의 혼이 3백 80여년 만인 지난 26일 한 줌의 묘토(墓土)에 담겨 환국, 그녀가 태어난 땅에 안주의 터를 잡았다. 서너 살의 나이에 임진왜란의 제물이 되어 일본에 끌려가 성장하면서 하느님을 알았고 당대의 권력가「도꾸가와ㆍ이에야스」의 집요한 배교 강요에도 초연했던 이 여인은 그때문에 고도「고오쯔시마」에 유배되어 신앙과 정절을 지킨 외로운 60의 생을 마치고 그가 묻혔던 섬 주민들의 품에 안겨 환국한 것이다. 26일「고오쯔시마」촌장 松本一(50) 동주민 30명은 이날 오전 11시45분 NWA기편에 묘토를 봉송해와 오후 3시 절두산 순교복자 기념광장에 안치했다.
▲공항=은백색의 비단 보자기에 싼 묘토 상자(가로ㆍ세로 20cm)를 조심스럽게 받쳐든 촌장을 선두로 주민들이 공항에 도착한 때가 12시경. 절두산 순교자 기념광장 박희봉 신부를 비롯 50여 신자들의 영접을 받았다.
이들은 보도진의 요청으로 약 20분간 인터뷰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松本一 촌장은『3백80여년간 섬의 수호신으로 외로운 섬을 지켜 주었고 은혜와 사랑을 심어준 줄리아를 고국에 편히 모셔 드리고 싶어 모시고 왔다』고 겸손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과 통행해온 동경교구 선교 담당 靑木靜男(46) 신부도 지난 3년간 한일 두 교회가 공동으로 줄리아제를 열러 오는 동안 한국 교회의 요청도 있었고 또 이제나마 고국에 모시는 게 도리일 것 같아 환국을 주선했다면서『줄리아가 하느님 안에서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교량 역을 해주실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줄리아 환국제(還國祭)=줄리아란 본명(本名) 외는 고향도 이름도 모르지만 신앙을 위해 대견한 삶을 산 형제의 환국을 보려는 5백여 성직자ㆍ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오후 3시 절두산 순교복자 기념광장에서 묘토 이장식 묘비 제막식을 포함한 줄리아 환국제가 베풀어졌다.
촌장 松本一 씨가 노기남 대주교에게 봉송해온 묘토 상자를 정중히 인계하자 노 대주교는 이를 축성한 후 김대건 신부 동상 왼편에 세워진 줄리아 묘비 유택(幽宅)에 안장했다.
묘비 제막식에 이어 3백 80년 간 줄리아를 보살펴 오다 이장해온 주민들에게 감사하는 김 추기경의 감사패를 김철규 부주교가 촌장 松本一 씨에게 전했다.「고오쯔시마」와 절두산성당 간의 자매결연식에 이어 복자찬가를 끝으로 1시간 30분 간에 걸친 환국제를 마쳤다.
이날 환국제에는 줄리아제에 초청되었든 노기남 대주교ㆍ한공렬 대주교ㆍ지학순 주교가 참석 주민들과 구연의 인사를 나누기도 했는데 촌장 松本一 씨는 내년 줄리아제에도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하는 모습도 보였다.
▲묘토 상자=주민들이 봉송해온 상자 안에는 직경 5cm 높이 15cm 크기의 대리석 상자와 묵주 1개 조약돌 5개가 들어 있었는데 묘토는 대리석상자에 약 한 줌 가량 담겨 있었다.
묵주는 줄리아가 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을 유일한 재산이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새로 만들어 넣었다고 한다. 조약돌은 20여년 간 줄리아묘를 지켜온 동네 다섯 할머니가 석별의 표시로 줄리아가 시름을 달랬을「고오쯔시마」해변에서 한 개씩 줏어 넣은 것이 라고. 이날 절두산성당은 자매결연 기념으로 한복 차림의 초상화 한 폭과 절두산성당이 새겨진 기념메달을 한 개씩 기증했고 주민들은「고오쯔시마」특산인「흑요석」한 개「쥬리아제」기념 사진첩을 답례로 전했다.
이날 절두산성당에는「吳多雅 줄리아 환국 환영」이라고 쓴 프레카드가 걸려 있어 사람들을 의아케 했는데「吳多雅」란 이름은 절두산 순교복자 기념관이 일본식 이름 오다(大田)를 우리말 소리에 따라 한자로 지어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