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산비탈에서 세상에 잊혀진 채 잡초처럼 살아온 음성 나환자 마을 상록원에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북돋아 주려는 신자들의 발길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본보(12월 14일字)에 상록원 주민들의「제2의 정착」을 위한 피어린 노력이 소개된 후 서울 등지에서 뜻 있는 신자들이 이들을 찾아 격려와 도움을 펴고 있고 한편에선 독지가들이 땅을 마련해 주기 위해 접촉을 갖는 등 오그라든 수족을 사진 찍어 외국에 보내 얻어 온 돈으로 해온 구라사업을 우리의 힘으로 해 보자는 의욕이 이 마을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것이다.
이들 주민 22세대 71명이 작년 말 마을 앞 하천 부지를 살리기 위해 주린 배를 참아가며 제방 작업(2백m)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있자 군종후원회 전회장 김광석씨(상문기업 사장)가 식량 20가마와 의류 일용품을 싣고 갔고 서울 중림동본당 신부와 신자들도 식량 20가마를 지원 이들이 우선 겨울을 넘길 수 있도록 온정을 폈다.
이어 경기도지사가 밀가루 30부대를 전달, 한때 이곳에 정착치 말라는 도(道) 행정 명령을 이행치 않았다고 해서 정착촌 등록을 못하는 서러움을 겪었던 이들이 기를 펴게 해 주었다.
1월 초 익명의 서울 어느 신부는 마을 입구에 있는 논 6백50여평을 매입해 주어 마을 진입로가 없던 이들은 길을 트고 논갈이를 할 수 있게 됐다는 눈물 섞인 환호를 올리기도 했다.
한편 이곳을 다녀 간 뜻있는 신자들은 그들이 토담집에 살면서도 공소만은 시멘트 블럭으로나마 가꾸어 놓은 신앙과 끈질긴 삶의 의욕에 감동, 조금씩 힘을 모아 이들의 정착 터전을 마련해 주자는 뜻을 모아가고 있다.
양평군 일대를 떠돌아 다니다 68년 용문본당의 주선으로 이곳에 온 후 구걸과 뱀잡이로 상록원 주민들에게 주어진 이웃의 온정들이었다.
『2년 전 부임해서 양동에 공소가 있다기에 처음 찾아가 보고 아직도 이런 곳이 있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얘들은 학교가 건너편에 있어도 취학을 못하고 있고 어른들은 병이 나면 술로 고통을 잊다가 죽어가는 형편이었습니다.』
사회와 교회로부터 잊혀진 고도(孤島)와 같은 이 마을을 위해 최초의 외교(?)를 펴온 경기도 룡문본당 주임 봉준석 신부(38)는 자신의 말을 빌리면 나병(癩病)의「癩」자도 모르지만「교회의 공동체 의식」이 있다면 결코 이들을 외면할 수 없다고 힘 주어 말한다.
그러나 전국에 산재한 40여개 가톨릭계 정착촌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버림 받았던 상록원 마을인지라 한 순간 햇살처럼 쏠리는 온정으론 해결하기 힘든 일들이 아직도 많다.
작년 말 뚝을 쌓은 하천 부지를 개간하는 것을 비롯 적어도 2정보의 농토는 확보돼야 식량 자급이 되며 현재 이들이 1년에 쌀 1말씩을 지세로 내는 집터도 사들여야 마음 놓고 살 수 있다.
또 누군가가 약간의 장학금을 희사한다면 국민학교를 끝내는 자녀들의 교육을 연장, 질곡의 과거를 위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