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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권 신부 사순절 특강 초] <1> 우리는 종교인인가, 신앙인인가

입력일 2019-11-19 11:21:48 수정일 2019-11-19 11:21:48 발행일 1986-02-23 제 149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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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심은 하느님 은총의 결과
종교심이 신앙심화 돼야
교리는 하느님이 계시하신 인생의 길
겸손된 승복과 조건없는 신뢰가 신앙
종교심은 인간본능적 욕구일뿐
극기와 절제의 시기 사순절이다. 차제에 본보는「성체와 가정의 해」에 초점을 맞추고 대구 가톨릭대학 정하권 학장 신부의 강의로 사순절 매토요일 오후 5시 명동성당에서 개최되고있는 서울대교구 사순절 특별강론 내용을 6회에 걸쳐 요약, 소개한다.

-우리는 종교인인가, 신앙인가-

모든 종교는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하는 물질적 세계외에 어떤 정신의 세계, 영의 세계, 초월의 세계, 초자연적 세계를 향한 집념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초월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서 여러가지 형태의 종교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종교를 믿는다는 말을 그종교가 제시하는 주장을 각자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 진리를 제시하는 자의 전지함과 성실함을 인정하고 그 주장을 내것으로 받아 들이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종교에 고통된 기본요소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종교적 믿음을 종교심과 신앙심으로 구분하여 생각하고 참된 그리스도교적 믿음은 종교심의 단계를 넘어서 신앙심의 단계에 도달하기를 요구한다.

인간은 자신의 자연적 능력안에 갇히어 있으려 하지않고 자기능력의 한계를 넘는 보다 완전한 행복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 이상의 어떤 힘에 의지하여서라도 이 행복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렇게 인간이 자기의 한계를 초월하여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믿음에 의한 구원 즉 종교적 구원추구라 한다. 인간이상의 어떤 큰 힘에 의지하여 구원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종교심 (宗敎心) 이라 부른다.

따라서 인간의 종교심은 개체보존의 본능이나 종족보존의 본능처럼 인간의 본능적 욕구의 하나이다. 고래로 문명이 없는 민족은 있어도 종교가 전연없는 민족은 없었던 것이다. 형태야 어떻든 종교현상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 오래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능적 종교심이 어떤 대상을 향하여 발로되는가에 따라서 여러가지 형태의 종교가 발생한다. 인간 이상의 어떤 힘을 자연물에 기대하는 종교심의 구체적 발로를 문명사회에서 미신이라 하고 어떤 도덕적 이상 (理想) 에 기대하는 종교심의 발로가 불교 도교 힌두교 유교 등 세계의 여러가지 대종교들을 출현시켰다.

초월적 힘을 자연이나 도덕에 두지않고 절대자 하느님께 두는 종교심을 특히 신앙심이라 한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되는 종교이다.

물론 이런종교의 신자들 중에도 그 믿음이 종교심의 단계에 머물고 신앙심의 단계에까지 승화되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 강론의 제목이 성립될수 있는 것이다.

종교심의 단계에 머무는 동안에는 종교실천이 기복적 (祈福的)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 교를 믿어서 현세적 이익이나 행복을 얻고 화를 면하고자 하는 심리라면 기복종교의 한계안에 머물기때문에 참된 신앙인이라고할수 없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심은 한가지 대전제와 두가지 소전제를 가지고 있다. 대전제는 현상계를 초월하여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며 우주만물의 원인이신 창조주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서야 그리스도교가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길을 가르치는 윤리이기 전에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실존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두가지 소전제는 하느님의 부르심인 계시(啓示)와 인간의 응답인 신앙이다.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의 뜻을 자유롭게 인간에게 알려주셨는데 이러한 하느님의 자기표현을 계시라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교리는 선현들이 연구하여 발견한 인생의 길을 아니고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인생의 길이므로 사람들은 겸손되게 받아 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겸손된 승복과 수용의 태도를 신앙이라한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인생의 길은 심오하고 인간의 지성을 초월하는 진리를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지성과 의지만으로써 승복수용할 수는 없고 반드시 하느님의 도우심 즉 은총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래서 계시와 신앙은 두가지다 하느님 편에 이니시어티브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의 본능인 종교심으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인 신앙심위에 성립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하부 구조는 종교심이고 상부 구조는 신앙심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교를 믿는 이유가 그 교리가 인간적인 안목에서나 현실적인 이해득실에서 볼 때 고상하고 합리적이고 유익해서가 아니고 하느님께서 그렇다고 계시하셨기 때문에 믿고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신앙이다.

그러나 참된 신앙이라도 무조건 믿는 것은 아니다. 계시를 지성만으로는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것을 계시하신 하느님은 완전히 알고 계시며 이 계시를 승복하는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셨으므로, 하느님의 전지하신 성실성과 인자하신 배려에 대한 완전한 신뢰심을 가지고 믿는 것이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우리의 참된 신앙심은 인간구원의 진리를 계시하신 전능전지하신 하느님의 권위를 승복하고, 인간의 영원한 행복을 원하시고 그 방법을 마련하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조건없는 신뢰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승복과 신뢰에 차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감수하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느님을 섬기고 타인에 대한 사랑과 봉사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신앙의 근거인 빠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사순절에 즈음하여 지금까지의 우리의 신앙생활이 단순한 종교심의 차원에서 답보하고 있는지 참된 신앙심의 단계에 올라 서있는지 깊이 성찰해 보는것이 사순절을 거룩하게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