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하면 으례 피서지가 생각난다.
어느해 바닷가에서 생긴 일이다. 키는 1m75cm의 잘생긴 청년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가문도 좋고 재력도 있는 집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난 명문대학 출신의 청년이었다. 그에게 한가지 흠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목소리가 너무나 가늘고 고와서 여자같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생각다 못해 이비인후과에 찾아가서 상담을 하였겠다. 의사의 진단결과는 정말이지 너무나 기가막힌 진퇴양난의 것이었다. 내용인즉 남자의 심볼이요 긍지(?) 그 자체인 남성을 거세해야만 그 목소리가 남자같이 된다는 해괴한 진단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이 청년은 과연 거세를 해서 남자같은 의젓한 목소리를 내느냐. 아니면 그대로 여성같은 목소리의 남자로서 살아가느냐 이것이 고민이었다. 그래서 청년은 이럴까 저럴까 생각하면서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아우구스틴 성인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골똘히 연구하면서 바닷가를 거닐듯이 말이다. 그러나 갑자기 죠-스(식인 상어)가 나타났다. 놀란 청년은 있는 힘을 다하여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를 질렀다. 『죠-스가 나타났어요 죠-스! 살려주세요!』 그러나 그 목소리는 영락없는 여자의 비명소리였다.
때마침 근처에 있던 청년들이 웬 여자의 비명소린가하며 저마다 빨리 달려와서 백마의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려고 했는데 아뿔사! 이미 때는 늦었나보다. 당연히 있어야 할 여자는 없고 난데없이 잘난 청년 한사람이 아랫도리에 피를 흘리고 기절해 있었다. 청년들이 무슨 일이냐고 당신 애인이 어떻게 된거아니냐고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그 청년의 말소리는 예전에 없었던 굵고 멋있는 남자의 음성이었다.
『죠스가 나타났습니다…그리고 여기는 아까부터 나 혼자 있었는데요』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소리가 갑자기 바뀐 이유는 졸지에 죠-스에게 중요한 부분만 수술(?)당했기 때문이라던가?(믿거나 말거나!)
흔히들 말하기를 『생긴대로 놀아라』고 한다. 자기의 운명과 생김새와 목소리는 손바닥의 지문이나 다름이 없다고 한다. 아무도 자기의 운명이나 생김새 그리고 고유한 음성은 바꿀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이것을 인공적으로 많이 수정하고 있다. 「유전공학이다」「인체공학이다」하면서 시험관 아기도 탄생시키고. 콧대도 세우고. 쌍꺼풀도 만들고. 남성을 여성으로. 여성을 남성으로 만들기도 한단다. 대관절 이렇게 되면 인체의 신비와 인격의 존엄성은 나중에 어디가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노아홍수 이후 사람들은 두번 다시 홍수의 피해를 입지 않겠다고. 하느님의 섭리와 대자연의 순리를 인공적으로 조절해 보겠다고 하늘 높이 바벨탑을 쌓았다. 그러다가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말의 혼란이 오지않았던가? 물론 아무런 노력도 연구도 투기도 하지 말자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제분수를 알아야 한다고했다. 소위 주제파악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나 다 지나치게 욕심을 내서도 안되고. 터무니없이 운명이나 신세만 타령해서도 안된다는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 모두에게 고유한 탈렌트를 주셨다고 한다. 열사람 백사람 모두가 다같이 잘생기고. 예쁘고. 똑똑하고. 부자로 태어나라는 법은 없다.
자고로 잘생긴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예쁜 여자는 박복하기 일쑤고. 부자는 인색해서 탈이고「식자우환」도 심심치않은 사례이고 보면 역시 사람들은 십인십색이요. 천태만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까 잘 생기고 돈많고 가문좋다고 해서 우쭐거릴 일도 아니고. 못생기고 가난하고 가문이 안좋다고 해서 마냥 슬퍼할 일만도 아닌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사람은 어떻게 태어났든지. 어떤 모양으로 생겨났든지. 어느 환경에서 살던지 하느님께서는 그 나름대로 다 적응력을 주셨고. 고유한 탈렌트를 주셨기 때문에 다 저마다의 독특한 삶의 의미와 가치가 주어진 것이다. 납작코에 누런색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동양인이라고 해서 인격의 존엄성이 적고. 긴코에 흰색 피부를 지니고 태어난 서양인이라고해서 인격의 존엄성이 더 위대한 것은 아니다. 흰둥이건 깜둥이건 노란둥이건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 권리와 가치는 균등한 것이다. 부
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모두 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임에는 예나 지금이나 또 미래에도 절대로 변함이 없는 진리이다. 모두가 한번 태어났으면 한번 죽게 마련이고. 죽으면 예외없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못생겼다고 해서 또 어디가 좀 부족하다고 해서 비관할 것도 없고. 잘났다고 부자라고 우쭐거릴 것도 없는 것이다. 생긴대로 주어진 여건속에서 하루를 살다 죽어도 최선을 다해서 살고 진실하게 정의롭게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답게만 살 줄 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요 천국의 시민이 되는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