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들이 엮는 광장] 늘어나는 대자ㆍ대녀

변재헌·경북 칠곡군 왜관읍253
입력일 2019-07-03 15:40:14 수정일 2019-07-03 15:40:14 발행일 1988-01-01 제 1586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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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핌에 소홀함 없어야
대도시 역광장에 세워진 인구증가를 알리는 숫자판을 바라보노라면 과연 놀라지 않을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우리들은 현재 핵가족화 시대에 살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자녀도 둘이 많아서 하나만을 갖자는 운동이 사회전반에 확산되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아름답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함께하는 삶을 사는가 하면 아예 자기본위의 위주로 독신도 불사하는 소위자아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적인 세태에서 살고있는 느낌이다. 이런 세류로 흐르다보면 자칫 2세들의 시대에는 촌수라는 개념마져 사라져서 그야말로 지금보다 더 삭막한 세상이 되지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혈육의 친자식은 아니지만 영적으로 맺어준 영의 자식이 또 너무 많아서 가끔 정신이 혼동될 때가 있다. 어느 본당에서든지 제반 단체의 감투나 쓰고 조금 열심하다고 현상이 붙은 자라면 때때로 체험한 일이지만 지나친 대부 대모청탁에 이래저래지도 못하고 그냥 발뺌의 기회도 없이 쉽게 승락을 해버린다. 가지많은 나무 바람잘날 없다고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대자 대녀의 관계도 그러하다.

아무래도 자녀들이 많아지면 소홀히 되기가 쉬운가보다. 단출한 대자 대녀일때는 그런데로 본명축일도 챙겨주고 어려운일이 닥치면 각별히 마음도 쏟겠으나 자녀만 많아지니 본의 아니게 따뜻한 마음이 뜸한것이 사실이다. 자칫하면 무관심의 길목으로 갈 수가 있으니 이러한 문제도 본당차원에서 더 넓게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어떨까 한다.

대부대자와 대모대녀의 사이는 늘 기도속에서 기억해주고 갓 영세한 연약한 신앙심에 악마의 피해를 입을까 스스로 신앙의 성장이 굳을 때까지 보살핌이 그 뜻이 련만…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그 기쁜날을 축하하면서 빈손에 입술로만 인사도 겸연쩍하지만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인근본당에서도 세례식을 하게되면 이또한 무슨변인가. 경제력이 넉넉치 못한이에게는 이것마저도 큰짐이 됨을 알았으면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대부대모를 설사람의 자격기준이 꼭있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신자생활을 착실히 지키는 사람이라면 될 수가 있어 굳이 한 사람에게 많은 자녀가 딸리지않게 서로 협력하면서 신친(神親)관계를 맺어보면 본당의 공동체는 더욱 하나로 일치될 것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큰힘이 나리라고 믿는다.

변재헌·경북 칠곡군 왜관읍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