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 주교님께 올립니다.
김주교님께서 제 글을 보시고 친히 가르침을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며 제 소견을 조금더 덧붙이고자 합니다. 주교님께 일일이 말대꾸를 하는 것 같아서 주저도 됩니다만 이 문제는 우리 교회의 중대사이므로 다시말씀을 올리게 된 것이오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주교님께서도 인정하신 것처럼 「여」가 예사 높임의 호격이라 할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가?」또는 「오소서 주 예수여」라고 하는 표현이 따져보면 매우 곤란한 문장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이까」나 「하소서」라는 어미는 극존체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국어의 어법에서는 상대방을 부르는 호격은 거기에 상응한 존대 동급의 어미와 대응 관계를 이루어야 하게 되어 있으므로 「주여」라고 부를 처지 라면 거기에 상응하게 「주여 어디로 가오(또는 가시오)?」「오시오 주 예수여」와 같이 해야 정상입니다. 「주여」라는 예사 부름말에 「하나이다. 하소서」와 같은 극존의 어미를 연결 시키는 것은 존대법상 앞뒤의 격이 안 맞는 표현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이다. 하소서」를 쓰자면 「주님(이시여)」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한편, 주교님께서는 「주여」를 쓴것은 가톨릭에서는 예사 존칭과 극존칭을 혼용하기 위해서 쓴것이라 하셨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이라는 호칭은 근래에 나타난 것이고 종래에는 「여」만을 써서 「주여」, 「천주여」라고 해왔기 때문에 혼용하였다고는 볼수 없습니다. 사실상 「여」를 최상급으로 잘못 알고 줄곧 써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가톨릭의 신관에 따라 일부러 예사 높임도 섞어 써왔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는 「주여」뒤에는 모두 극존칭의 어미를 대응시켜 써왔던 사살에서 증명이 됩니다.
라띤어나 서양말의 「Tu」에 대응한 국어의 대명사로서 「너」를 써 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살펴 본 바로는 그것은 국어의 특성을 모르고서 한 일임이 분명합니다. 초기에 성서나 기도문을 우리말로 옮길 때, 국어의 어법을 정확히 알고 하였더라면 그런 잘못된 번역을 하지않았을 것입니다.
주교님께서도 지적하신 비와 같이 인구어의 2인칭 대명사 「Tu」등 (라띤, 불어, 독어:du, 영어:thou)은 아랫 사람이나 동료 등 친한 사람을 주로 가리키는 것인데, 그것으로 하느님을 가리켜 온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을 아랫 사람처럼 낮추어 가리키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친근하게 가리키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본시 그들 나라말에서는 우리나라 말처럼 존대 등급 구분이 엄격하지 않으므로 다소 높다고 하는「Vos」등(라띤:vos, 불어:vous, 독어:Sie, 영어:ye)과 넘나들면서, 손윗 사람이라도 친하게 되면 vos 대신 tu가 쓰였다고 합니다.따라서 서양말의 「tu」는 존대 등급 차이보다는 주로 친소 관계에 따라 선탁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tu」와 우리말의 2인칭대명사「너」의 쓰임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친한 관계라도 손윗 사람인 아버지, 선생, 신부에게「너」는 절대로 쓸수가 없지않습니까. 따라서「하느님」은 아무리 친하게 여긴다고 해도「너」라고 부른다는 것은 국어 어법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친한 사이에도 예의를 갖추어 말하는 것이 우리말 쓰임의 기본입니다. 따라서 1960년대까지 「천주여, 너 너를 위하여 나를 내셨으니」라고 기도했다는 것은 주교님말씀대로 해도 너무한 것입니다. 더구나 그것을 아무 거리낌없이 써왔다는 것은 어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해온 것으로서 국어를 아는 외부인들의 빈축을 살 만한 일이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주님의 호칭 문제 등은 교리 신학자들의 분야라고 하셨는데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줄 압니다. 그러나 신학적인 문제라도 국어로 표현할 경우, 더구나 그것이 우리나 일상쓰게되는 국어 기도문이라 할때는 국어의 어법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정상적인 어법에 어긋나는 표현일때 기도문의 품위가 손상됨은 물론 일반 국어 생활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같은 내용이라도 언어적 표현 여하에 따라 전달 효과가 달라지므로 최선의 국어로 표현된 아름다운 기도가 되도록 신학자와 국어학자는 물론이요 우리 신자나 국민 모두 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여 중지를 모아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주교님의 강녕을 빌며 이만 줄입니다.
서정수 가브리엘 (한양대 교수, 주교회의 전례위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