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의 상호작용
사회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서로 서로가 취하는 행동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육신과 영혼을 지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의 연관성을 물리적세계와 윤리적세계로 나누어 생각 할 수 있다.
물리적세계에 있어서 사물의 상호작용은 과학자들이 말하듯, 사물의 한가지 동작이 반드시 다른 사물에 직접ㆍ간접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지면 그 파문이 가장자리에까지 번지게 되며, 어린아이의 가냘픈 울음소리도 창문을 뚫고 달세계까지 울려 퍼지듯, 윤리적세계도 마찬가지다.
한사람이 취한 행동은 남에게 반드시 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이 서로 교차하면서 어떤때는 선행이, 또 어떤때는 악행이 더 강해지고 약해지면서, 선과 악이 균형을 잡아 흘러가는 것이 인간사회라고 볼 수 있다.
문제의 발생
사실 우리가 당면하는 여러가지 사회적 어려운 문제는 정치제도가 나쁘거나 혹은 경제정책이 올바르지 않아서, 도는 기후 때문에 … 등등의 이유가 아니라 우리중의 누군가가 잘못된 행동을 취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생은 사람이 나쁜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악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걱정스럽고 불안한 모든 사회문제는 사람이 누군가가 악을 행하고 죄를 범하기 때문이란 얘기다. 즉 죄를 범하고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과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속죄하고, 대신해서 벌을 받고, 고통을 지니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인류역사는 이어진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의 징표로서 너무 엄청난 악들이 일어나고 있다.
유물론적인 공산주의, 1ㆍ2차세계대전, 쉴새없이 발생하는 국제전쟁, 가진 자는 덜 가진자를,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스승은 제자를, 제자는 스승을, 통치자는 국민을, 국민은 통치자를 미워하고 의심하는 불신사조가 팽배하고 있다.
퇴폐행위와 사치풍조, 성의 문란과 쾌락주의, 인간생명을 부인하는 갖가지 폭행….
한마디로 죄와 악이 팽배하는 세상, 우리 모두가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이다.
누군가가 이 모든 악과 잘못을 받아들이고 대신 갚음으로써만 해결이 된다.
오늘의 급선무는 악의 세력을 멈추게 하는 일이다. 그 이유는 인류의 멸망은 절대로 무기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죄악을 감행함으로써 자멸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인의 속죄
과거 70여년동안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굴레밑에서 비록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러시아 국민들은 엄청난 수난과 아픔을 감당해야했다.
세계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서 그들은 크나큰 역할을 하였고 큰몫을 차지 한것이다.
남모르게 시대적 십자가를 지고 많은 잘못의 대가를 러시아인들이 감수했어야만 했다.
그래서 74년 동안이라는 그들의 속죄와, 속죄의 고통으로 얼룩진 세월을 바친 이들의 힘으로 몇년전만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이 소련에서 일어난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계는 두개로 크게 나누어져 있었다. 한쪽은 공산진영으로서 목적도 없이 침묵을 강요당하고 사는 세계이고 또 한쪽은 민주자유 진영으로서 하느님을 믿는다는 뚜렷한 목적은 있으면서도 의욕을 상실했던 사람들의 세계였다.
사실 공산주의는 1917년 몇몇 사람들에 의해 소련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그 철학은 결코 러시아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맑스가 응용하여 러시아를 공산화하는 이념으로 삼았다.
공산주의혁명은 서구 자본주의의 타락의 결함에 반발하여 일어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구의 잘못을 공산주의가 러시아 사람들에게 그 속죄의 멍에를 뒤집어 씌운것이라고 할수있다.
국민성의 승리
러시아 국민은 1천년이상 기독교 문화를 꽃피웠고 서구의 이지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반한 종교적이며 정서적인 국민성을 지닌 민족이다.
1917년을 시작으로 3억에 가까운 소련땅의 사람들에 대한 몇몇 공산주의자들의 학대와 탄압과 희생의 강요한 참으로 엄청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아마 1917년이래 저질러진 세계 인류의 죄악을 갚기위해 러시아 국민들이 대신 십자가를 짊어진것이라 볼 수 있다.
이번 소련의 쿠데타가 세계에 보여준 것은 대다수의 러시아 국민은 민주주의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쿠데타를 실패로 이끈 것은 다른 기존세력이 동원한 군의 강제진압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의 자발적 힘이다.
따라서 소련이 민주화운동과 공산주의의 몰락은 결정적으로 민중의 뜻에 의해서 이룩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산주의의 잔당이 남아 또 다른 혁명의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라도 사람들을 지배하는 이념으로서는 끝이 난것이다.
새 체제의 형태
앞으로 러시아 국민들은 참된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지나간 과거를 선용해야 한다.
새로운 체제가 어떠한 형태인지 두고보아야할 일이지만 새국민을 강압적으로 다스리고 허위와 저질의 힘으로 지배하는 체제라면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초강대국이 어느 나라가 되더라도 허위와 탄압으로써 행세하려 한다면 반드시 인류전체의 지탄을 면치 못할것이다.
어떻게 보면 러시아들은 74년의 악몽에서 깨어나왔다. 즉 어리석게 속아넘어가 철저히 이용을 당했다. 이 실수를 앞으로의 민주화추진에 좋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다시는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실수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처럼 과거를 올바르게 이용할 때 그들 자신뿐 아니라 온세계의 평화를 위한 기여를 하게 될것이다.
본래 지니고 있던 러시아의 종교적 국민성을 자유로이 발휘하게 될것이고 천년이상이나 꽃피웠던, 기독교문화가 되살아 날 것이다.
그리하여 신을 인정하면 서로 또한 신을 외면하고 멀리하는 냉담을 서구인들의 마음속에 러시아 국민들은 불을 지펴 줄것이며 비로소 온세상이 함께 아버지의 품으로 되돌아 갈수 있을 것이다.
하나된 세계인류
이제 두개의 세계가 아닌, 하나된 세계인류가 민주주의의 체제 안에서 사람이 바라는, 사람에게 맞는, 사람을 위한 평화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이번 소련에서의 정의로운 혁명으로 인해 온세계가 편안하게 잠을 잘수 있게 되었고 러시아는 이제 새로운 역사창조에 앞장서게 될 것이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힘겹게 싹튼 민주화의 불꽃이 앞으로 두고 두고 기억될 것이다.
자유세계는 이제야 악몽에서 깨어난 소련이 민주화의 성공을 위한 경제난으로 허덕이고 있음을 그냥 지나치거나 방관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보면 온 세상의 잘못으로 인한 화를, 우리대신으로 속죄하고 십자가를 진 그들이기에, 지금 우리는 반드시 경제적인 도움을 베풀 의무가 있는것이다. 즉 공산주의로 갈라졌던 세계가「대립」아니「화해와 협조」로서 새 출발을 해야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할 점이있다.
북경에서 불발탄으로 끝난, 천안문의 민주화 혁명이나 이번 소련에서 성공한 공산주의의 목락과 민주주의의 승리는 결국 인간의 두가지 욕구의 대결이었다고 볼수 있다.
인간은 자유를 누리려는 욕구와 권리를 쟁취하려는 두가지 속성이 있다.
또한 권리는 자유를 용납하지 않는다.
천안문사건이나 소련에서의 드라마는 이 두가지 욕구의 격투였고 대결이었다.
권리가 이긴 천안문사건이나 자유가 승리한 소련의 사건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변천함을 또 한번 깨닫게 된다.
자유든, 권리든, 어느쪽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느쪽이 승리하든, 그 승리는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역사의 교훈
세상은 변하고 또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절대적이고 영원함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역사의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그 변천속에 함축되어있는 뜻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소련 민주주의의 승리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보면서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그 역사속에서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을 새삼 깨닫게되고, 승리한 민주주의의 힘찬 행진도 또 언젠가는 변화하게 될 날이 있겠기에 볼세비키혁명이 일어난 같은해, 파티마에서 어린 세 아이들에게 밝히신 성모님의 메시지가 머리에 떠 오른다.
『러시아를 내 하자없는 성심께 봉헌하라. 온 세상의 죄를 대신 보속하고 희생하며 러시아의 회개를 위해 묵주의 기도를 바쳐라. 내가 말한대로 너희가 실천하면, 러시아가 회개할 것이고 얼마동안 세계의 평화가 올것이다』.
이번 소련의 공산주의 몰락과 민주주의의 승리로 세계가 다시 하나가 되어 평화의 서광을 엿보면서도 성모님의 「얼마동안」이란 말씀이 자꾸만 생각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