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백민관 신부가 엮는 신약성서 해설] 123 완악한 세대엔 표징 필요없다

백민관 신부ㆍ가톨릭대교수
입력일 2019-01-07 09:45:16 수정일 2019-01-07 09:45:16 발행일 1991-02-17 제 174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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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 8,11-13 : 마태 16,1-4)
표징요구는 불신과 악의에서 비롯
예수는 완고한 세태 한탄하며 그들에게서 떠나
첫 번째 빵의 증식기적 후에 예수의 적대자들은 정결예식문제로 예수께 시비를 걸어 논쟁하였고(대목117참고) 두 번째 빵의 증식기적 후에는 그들은 표징으로 메시아인 것을 증명하라고 대들었다. 그 적대자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이 요구 자체가 그들이 예수를 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다만 그들은 그 의심을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 싫어하는 불신과 악의를 품고 있었을 뿐이다.

예수께서는 4천명에게 빵을 나누어 주신 후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배를 타고 제자들과 함께 달마누타 혹은 마가단이란 알려지지 않은 지방으로 가셨다. 배를 타고 미지의 지방으로 가신 것은 사도시대 교회(배)가 미지의 개척지를 향하여 선교를 떠나는 모습이다. 그곳에서는 늘 어려운 일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예수께서는 적대자들의 시험에 부딪쳤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그 속성은 이미 여러 번 소개한바 있다. 여기서는 그들의 옹고집에서 나오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불신앙이 돋보인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반목하는 사이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오신 곳은 헤로데의 영토였고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헤로데와 손잡은 당파였다. 이들은 일명 헤로데파 사람들이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유식한 계층의 사람들로서 종교와 정치에 동시에 전념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그들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예수사건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시아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민족적이고 역사적인 중대사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하늘로부터의 표징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하늘로부터의 표징은 기적과 다르다. 기적은 상식을 넘는 초능력의 발휘로서 마술사나 초능력자로 자처하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은 믿고 있었다. 빵을 불려서 사람들을 먹이는 따위는 요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그들은 간단하게 처리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류다스라는 엉터리 예언자가 나타나서 자기가 메시아라고 떠들며 말 한 마디로 요르단강물을 갈라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건너가겠다고 큰 소리 치다가 잡혀서 처형당한 일이 있었다. (사도 5,36참조)

그러니 예수가 행했다는 기적들은 메시아가 보낸 예언자라는 표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적들은 초능력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땅에서 이루어지는 사람에게서 나온 능력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에서부터의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메시아 예언의 전문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가 나타날 때의 표징을 지하세계만큼 깊은 곳에서 오는 표징이나 하늘과 같은 높은 곳으로 부터의 징표대신 주께서 몸소 보여주실 징표로서 동정녀 몸에서 태어날 아기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바 있다(이사7, 10이하)

임마누엘이라는 호칭을 받으며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아무도 모르게 말구유간에서 태어난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아인데 그분은 지금까지 메시아라고 자칭하지도 않았고 그 사실을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도 온유하고 겸손한 그의 성격은 오히려 적대자들의 신경을 건드렸고 그들과 함께 휩쓸리지 않는 것이 그들을 화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시험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하늘로부터의 표징을 보여 메시아임을 드러내라고. 이 시험자들은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완악한 자만심 때문에 시대의 징후에는 깜깜한 사람들이다.

예언서를 읽고 무사공평한 판단을 한다면 지금 이 시대가 구원의 메시아를 조금이라도 알라 볼 눈이 뜨일 것이다. 걸핏하면 성경구절을 입에 올리고 툭하면 하늘을 들먹이면서 예언자들이 전하는 하느님의 뜻에는 일부러 외면하는 이 사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는 요나의 설교를 듣고 희개한 저 이교도의 도시 니느베만도 못하고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저 땅 끝에서 온 세바(현 사우디땅)의 여왕만도 못하다.

이 세대야 말로 예레미야 예언자가 질타한 배은망덕의 세대와 같고 (예레 2,1-3 : 20-25 : 32-33 : 3,1-5) 호세아의 저주를 받은 사악한 세대 (호세 2,3-22)를 꼭 닮았다. 병자들이 나았고 벙어리가 말하고 귀머거리가 듣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악인이 회개하여 순환되고 하는 정도의 기적들은 그들에게 너무나 저속하였던가.

사람을 구원하는 표징들을 외면하는 이 세대에 하늘에서부터의 표징을 보여봤자 그들의 악성만 더 커질 뿐 이로울 것이 없다. 예수께서는 이 세대를 한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을 떠나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떠나가셨다. 예수께서 떠나가는 사실 그 자체가 그들의 심판의 시작이다.

백민관 신부ㆍ가톨릭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