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구미리내의 세계 배낭여행기 유럽, 그 웅대한 역사를 따라] 2 대영박물관과 하이드파크

입력일 2018-11-15 13:20:31 수정일 2018-11-15 13:20:31 발행일 1993-11-07 제 187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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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숙소 구하려 인정에 호소

일광욕 즐기는 반나체족 많아
어젯밤 얼떨결에 하루를 묵었던 유스호스텔은 16파운드(약 2만5천원)라는 어마어마한 숙박비 때문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안내책에 나온 대로 숙소가 밀집되어 있다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몇군데를 들러보고는 런던학생숙소라는 곳에 머물기로 했다. 10파운드에 아침도 제공해주고 무엇보다도 주인이 너무도 친절한 것에 마음이 끌렸다. 주인은 4시 이후에나 방을 사용할 수 있으니 짐을 맡겨놓고는 시내구경을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우선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최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대영박물관으로 향했다. 대영박물관은 지하철을 이용해 홀 본역에 내려서 왼쪽의 표지판을 따라 조금만 가면 있다고 했다.

한참을 왔는데도 당채 보일 생각을 안했다.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경찰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가던 대로 그냥 쭉 가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의심쩍어 다른 사람에게 또 물어보았다. 그는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얼굴로 킬킬 웃으며 바로 옆에 있는 큰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이고 웬 창피…

대영박물관은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의 대리석 조각들, 그리스의 병, 영국의 고문서, 세계 각지의 민속 자료의 수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루브르가 보다 우수한 미술품을 위주로 수집했다면 대영박물관은 보다 학술적인 것을 중점적으로 수집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이 박물관은 로얄 아카데미 원장이었던 스루운 경이 5만권에 이르는 고본과 미술공예품을 국가에 기탁했고 거기에 허튼과 하알리 두문고가 보태져 1753년에 그 기초가 마련된 박물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박물관이 있었으면…

일반관광객이 보는데에는 최소한 나흘도 더 걸린다는 거대한 대영박물관을 4시간여 만에 구경을 마쳤다.

그곳을 나와서는 런던 시민의 휴식처라는 하이드 파크에 가보았다. 그곳은 시민 휴식처라는 이름답게 평일의 점심시간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옷을 벗다시피 하고는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햇빛만 보면 사족을 못쓴다더니 그 말이 너무도 실감났다. 어떤 이는 아예 가족동반으로 와서는 어른 아이 할것없이 홀랑(?)벗고는 드러누워 있는 것이었다.

나원참, 저 가족들은 무얼 먹고 살길래 아빠가 직장도 안 나가고 지금이 시간에 이러고 있는걸까? 한편으로는 그런 여유스런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오후 4시가 가까워오자 나는 구경을 서둘러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다른 사람에게 방을 빼앗기는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마저 노숙을 불사하고 밤 늦게까지 버틸순 없었다.

그런데 이건 또 웬 날벼락인가. 5시쯤에나 방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없이 숙소 휴게실에서 책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바깥 구경을 갔다가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하면 여태까지 기다린게 헛수고가 되기에 그만두었다.

따분함으로 몸을 비틀다가 5시 정각에 리셉션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이번에는 또 1시간 후에나 와야 방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사람 놀리나 싶어 화가 났지만 그래도 꾹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번에는 휴게실에도 가지않고 리셉션에서 바로 내다보이는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한 10여분 정도를 앉아 있었을까? 주인 여자가 이제는 방을 써도 좋다며 열쇠를 내주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인간적인 면에 호소하는 게 최고라니까. 어제밤보다 훨씬 좋은 침대에 누우니 왕비가 된 기분이었다. 지금쯤 서울의 하늘에는 아침 햇살이 반짝거리고 있을텐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