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길에서 쓰는 교구사] 수원교구청(상)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10-30 수정일 2018-10-30 발행일 2018-11-04 제 3118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구 급성장하며 1997년 교구청 신축
기와지붕 등 한국 건축의 미 살려 완공

2009년 수원교구청 ‘평화의 예수님상’ 축복식을 주례하는 이용훈 주교.

독특한 지붕의 모양이 한옥 기와지붕 곡선을 닮았다. 사다리꼴의 입구부분과 입구를 둘러싼 건물 형상은 마치 우뚝 선 수원 화성의 모습처럼 웅장하다. 언뜻 보기에는 서양식 건물이지만, 한국 건축의 미를, 특별히 교구의 중심 도시인 수원의 특색을 한껏 살렸다.

정문 앞에 서있는 예수상도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두 팔을 활짝 펼친 예수상은 두루마기를 입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 예수상을 조각한 엄종환(요셉)씨는 예수상의 얼굴도 서양인이 아닌 한국적인 모습으로 조각했다.

바로 우리 교구청 모습이다. 교구청은 마치 교회는 서양 종교가 아니라 우리 종교라고, 예수는 성경 속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함께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교구청. 교구장 주교를 보필해 교구 전체의 행정과 교회법규와 관련된 사법 등을 담당하는 교구의 기구다. 교구청은 주교가 사목직무 수행을 위해 사제단의 도움을 받아온 사실에서 유래하는 기관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교구청은 건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구장 주교를 보필하는 사람들과 기구들의 일체를 의미한다.

교구청은 예로부터 주교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수행하는 관료적인 행정체계였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는 단지 교구 관리와 운영의 행정 업무에 그치지 않고 교구 전체 사목활동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핵심기구로 위치와 역할을 차지한다. 비유하자면 교구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교구청은 1997년 2월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 이목로 39 현재 장소로 이전했다. 교구가 30여 년을 사용했던 화서동 교구청(현 제1대리구청)을 뒤로 하고 새로 교구청을 마련한 것은 교구의 성장 때문이었다.

1967년 화서동에 교구청을 마련할 당시 교구민은 5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교구 신자수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1997년 새 교구청을 마련할 당시에는 신자수가 40만 명을 넘어섰다. 빠르게 성장하는 교구에 맞춰 교구의 모든 행정과 사목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화서동 교구청 규모가 협소했다.

이에 교구는 1993년 사제 총회를 열고 교구 청사 신축에 관해 논의했다. 이어 1994년 10월 10일 교구청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고 1997년 교구청사를 이전했다.

교구는 청사 이전과 더불어 교구청 편제를 사무처와 복음화국, 청소년국, 관리국 등 1처 3국 체제로 개편했다. 교구는 새 교구청 이전과 동시에 편제 개편을 단행함으로써 복음화국의 위상을 강화해 교구 역량을 복음화에 주력하고자 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