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5년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 지방에서 태어난 주세페 멜키오레 사르토는 신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1850년 파도바의 신학교에 입학했다. 1858년 사제품을 받고, 1884년 만토바교구 교구장 주교로 임명됐다.
레오 13세 교황의 뒤를 이어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된 그는 교회 개혁과 신앙 쇄신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는 교회음악을 전례 쇄신의 출발점으로 삼고, 그레고리안 성가 중심 초창기 교회음악 양식으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특히 성체 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해 매일 영성체할 것을 강하게 권고했다. 고해 성사를 자주 볼 것을 강조하며, 첫 영성체 연령을 12세 이상에서 7세 이상으로 낮추기도 했다. 또한 교회법을 개정하고 불가타 성경개역위원회를 설립한 뒤 시편과 성무일도서를 개정했다.
당시 만연한 근대주의와 상대주의는 가톨릭교리의 가변성을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그릇된 풍조에 대항해 근대주의를 ‘모든 이단의 총집합’으로 규정하고 분명한 반대의 뜻을 표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22일 만인 1914년 8월 20일, 그는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개탄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선종 직후부터 이미 성인으로 칭송받던 그는 1951년 시복됐고, 3년 뒤인 1954년 5월 29일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