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도박 중독에서 해방된 사람의 충고

입력일 2018-08-09 17:53:40 수정일 2018-08-09 17:53:40 발행일 1993-05-30 제 1857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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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은 영혼의 AIDS”
“유혹에 무기력한 자신” 인정서 치료 시작
20년 도박중독 ‘단도박 모임’ 통해 치유
도박은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병인가? 도박은 단지 무시되고 숨겨지기보다는 사회 전체가 끌어안고 함께 치유해야 할 병이다. 슬롯머신의 대부 정덕진씨의 구속으로 도박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가운에 가톨릭신문은 현재 가톨릭에서 주관하고 있는 단도박 모임을 통해 도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이들의 철저한 익명의 원칙에 따라 이름과 사진은 공개치 않기로 한다.

“도박은 정신질환의 일종입니다. 도박의 수렁에 빠져 있던 내가 ‘한국 단도박 친목모임’을 몰랐다면 아마도 자살을 했거나, 거지 또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20년 동안이나 도박에 미쳐 비참한 삶을 살았던 한모씨(54). 그가 도박에 미쳐 지냈던 지난 삶은 암흑과 절망 자체였다.

도리짓고 땡, 섯다를 시작으로 고도리, 슬롯머신까지 안 해본 게 없는 전씨는 “도박을 끊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까지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고 밝히면서 “늘어나는 사채를 감당하기 어려워 집은 팔고 전세에서 월세로, 월세에서 사글세방으로 전전긍긍해야 했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했다.

한씨는 “도박으로 지은 빚을 갚기 위해 전세 값을 빼, 월세방을 계약하고 그 반액을 갖고 빚을 갚으러가다 그 길로 도박판에 빠져 일주일동안 놀음을 해 날린 적도 있다”고 말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도박에 미쳐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박은 무엇보다도 돈 문제와 심각하게 연관된다. 노름판의 화폐가치는 상식을 초월하리만큼 떨어져 담배 한 갑이나 술 한 잔에도 몇 만원씩에 거래돼 돈을 낭비하게 된다. 그리고 도박자들은 판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거짓말, 도둑질, 심지어는 살인까지도 불사한다.

이에 대해 단도박 모임 관계자들은 “도박중독 환자는 화투, 포커, 빠찡고, 카지노, 전자오락, 경마 등등의 오락을 가끔 즐기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이 환자들은 노름을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가정이나 직장은 물론 해야 할 모든 일을 망각하고 도박에만 몰두하여 본인은 물론 가정이나 이웃 또는 직장에까지 정신적으로 재정적으로 피해를 주면서도 절제력을 잃고 도박을 한다”고 설명한다.

“단도박 친목모임에 9년째 나가고 있으나 일단 도박중독증에 걸렸던 사람은 평생 환자이기에 언제 어느 때 다시 시작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한씨는 “도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선 잃은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적절한 취미생활을 해야 할 것”이라며 아울러 “우리 같은 도박환자들을 이런 모임에 나올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주어야 할 것”이라고 피력한다.

이와 같이 상습도박증은 맹세나 강한 의지만으로는 끊을 수 없는 가장 이상하고 복잡한 정신질환이다. 그래서 단도박 친목모임에서는 12단계 영적프로그램은 자신이 도박의 유혹에 무력했음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눈 깜짝할 사이 몇 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돈을 잃게 되는 슬롯머신, 알콜중독보다 더욱 무서운 상습도박으로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자신의 체험담을 나누고 지속적이고 단계적으로 치료를 하고 있는 ‘단도박 친목모임’을 통해 가정과 자신을 무서운 병으로부터 해방시킨 한씨의 노력이 퇴색되지 않으려면 현재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정덕진씨 사건의 명확한 진상조사와 처벌, 도박중독 환자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인 노력들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