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낸 유안진 시인

권세희 기자
입력일 2018-01-09 18:38:23 수정일 2018-01-09 20:40:49 발행일 2018-01-14 제 3078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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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지음/ 224쪽/ 1만2000원/ 가톨릭출판사
사람에게 넌덜머리 나도 결국 사람이 희망입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건져낸 신앙 이야기
“아픔 있는 이들 치유하는 책 되길” 희망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중요합니다. 그 일상들이 모여서 삶이 되는 것이지요. 일상을 빼고 나면 우리의 인생도 없지 않을까요.”

유안진(클라라·76·서울 방배동본당) 시인은 평범함에 대해서 이렇게 풀어놨다. 「지란지교를 꿈꾸며」, 「숙맥노트」 등 다양한 작품을 펴낸 시인은 글의 영감을 묻는 말에 ‘일상과 평범함’을 말했다.

그는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키우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자식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또 부모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장 평범한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유 시인의 이야기처럼, 그가 새로 들고 나온 신작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에도 저자가 일상생활에서 느낀 것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책은 「참 소중한 당신」과 서울주보, 수원주보 등에 수록한 글을 모아 엮었다.

책에 수록된 글 ‘잡초가 잡초를 뽑다가’를 보면 아무렇지 않게 잡초를 뽑던 시인이 그 순간 스스로도 인간 잡초가 아닐지를 고민하곤 한다. 이처럼 시인은 평범하게 스치는 것들을 그저 놓아두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며 관찰한 것을 이야기한다.

그의 문학인생을 이야기할 때면, 첫 물꼬를 터준 고(故) 박목월 시인과의 일화를 뺄 수 없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범대학을 다니던 저자는 고등학생 시절 나간 백일장에서 심사위원이던 시인에게 칭찬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그에게 편지를 썼다. 박목월 시인은 그를 만나 설렁탕을 한 그릇 사줬다. 그때 박 시인은 설렁탕 소금을 자신의 밥그릇 옆에 둬 유 시인은 말도 못하고 맹숭맹숭한 설렁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식사를 마친 뒤 박 시인은 그에게 “숙맥 같은 면을 가진 걸 보니 시를 잘 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드러나듯 유 시인의 글들은 담백하면서도 진득한 울림을 전한다. 이번 책에 수록된 ‘사람이 희망이다, 살아 있음이 희망이다’에서 ‘사람! 사람에게 넌덜머리가 나면 사람이 얼마나 혐오스럽던가마는, 그래도 사람 세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기에, 삶의 문제는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도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드러난다.

특히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는 그가 등단한 이래 신앙을 자세히 담은 드문 작품이다. 유 시인은 “성당에 와서 기도도 하고, 퇴직 후에 더 깊게 성경을 묵상하고 읽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2014년 선종한 남편 고(故) 김윤태(프란치스코) 교수로 인해 1995년 즈음 유 시인은 ‘클라라’라는 세례명으로 가톨릭 신자가 됐다. 서강대학교에서 교수로 있던 남편이 사제들의 검소한 모습에 마음의 울림을 크게 얻었다고 한다.

그는 “하느님께서는 그의 자식들에게 결코 사랑을 멈추지 않고 기회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하느님 아버지라는 호칭도 너무 좋고 신자들끼리도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앞으로 작품에 대해서도 ‘신앙의 이야기가 담겼으면서도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내놓는 것이 과제’라고 밝혔다.

유 시인은 마무리하면서 신작이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 치유가 되는 책’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보면 어느 부분은 누구나 부끄러움이 있을 것이다. 치부가 없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이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