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느 밤, 누군가가 나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범했습니다.』이 얘기는 세르비아 병사들에게 강간 당함으로써 잉태된 아기를 기르고 보살피기 위해 수도회를 떠난 젊은 보스니아인 수녀 루찌 베트르스(Lucj Vet-ruse)가 쓴 편지의 눈물 겨운 구절 가운데 하나이다. 필리핀의 주간신문 세게노 세또(Segno Setto)가 보도한 이 편지에서 루찌 수녀는 총장수녀에게 수도회를 떠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 아이가 폭력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점을 총장수녀에게 인식시키고 있다.
존경하는 총장수녀님.
제 이름은 루찌 베트르스라고 합니다. 저는 수련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세르비아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이 같은 불행에 대해 더 상세히 말씀드리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처럼 잔악한 경험은 오로지 저를 거룩하게 하신 하느님께서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드라마는 한 여인으로서 고통 당하는 치욕이 아닙니다. 저의 실존적 그리고 성소적 선택에 가한 치유할 수 없는 공격도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제가 신적 배우자처럼 여기는 그분 또한 제가 자발적으로 순교의 은총을 간구했던 그분의 헤아리기 어려운 뜻의 일 부분을 의심의 여지없이 형성하는, 하나의 사건을 신앙에로 끌어들이는 어려움인 것입니다. 그분은 제 말을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무슨 조건 아래서였던가요! 저는 지금 영혼이 괴로와하는 밤에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분은 제가 분명하고 고귀한 것으로 생각했던 삶의 계획을 파괴하셨고 이제 제가 발견할 필요가 있는 새 계획을 마련하셨습니다.
젋은 사람으로서 저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어떤 것도 내 것은 아니다.『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속해 있지 않고 어떤 사람도 내게 속해 있지 않다』. 반면에, 제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느날 밤 누군가가 저를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면서 저를 범했습니다. 그날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햇볕이 화사한 날이었고, 제가 가졌던 첫 생각은 올리브 동산에서 예수님이 고통 당하시는 장면이었습니다. 제 안에서는 끔찍한 싸움이 분출했고, 왜 하느님은 제가 존재의 이유로서 고려했던 것이 고문 당하고 파괴되도록 허락하셨는지 그리고 과연 그분이 저를 새로이 어떤 성소에로 이끄시는지 저 자신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저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일어섰습니다. 십자성호를 긋고 속으로 되뇌었습니다.『지금 이 시간 골고타에 계신 그리스도여, 우리의 구원을 위해 속량되신 진정한 빠스카 양이여…』천천히 저는 말했습니다.『당신의 뜻은 이루어지소서!』
수녀님, 저는 당신께 이 글을 쓰는데 위안의 말씀을 청하고자 함이 아니고, 원하지 않는 임신을 강요 당하고 또는 강간 당하는 수많은 우리 동포들에게 제가 동참하도록 허락하신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에 수녀님께서도 함께 하시도록 요청하는 바입니다. 저는 저의 치욕을 통해서 그들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대립하는 두 종족 사이에 평화가 깃들기를 위해서 그리고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는 죄의 사함을 위해서 제가 봉헌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 불명예를 받아들이고 제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깁니다.
제가 세르비아인 군인들에게 짓밟혔던 그날 밤 시간이 가는 동안 저는 계속해서「너는 죽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갔습니다. 수녀님,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전화 통화하는 동안 수녀님은 위안의 말씀을 하신 뒤 질문을 하나 제게 던지셨습니다.『그대의 뱃속에 들어있는 생명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수녀님이 그 질문을 하시는 동안 수녀님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즉각적인 답변은 드리지 않기로 결심을 했는데, 그것은 제가 결정을 못해서가 아니라 수녀님이 저한테 가능성 있는 대안들을 제시하시는 걸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미 스스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만일 제가 엄마라면 아이는 당연히 제 것이지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설령 제가 이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대하거나 원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 아이에게는 엄마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식물도 뿌리가 잘려서는 안 됩니다. 좋은 땅에 떨어지는 곡식의 낱알은 씨 뿌리는 사람-그가 혹은 그녀가 설사 나쁜 사람이더라도- 이 던진 곳에서 자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다른 모양으로 수도성소를 지켜갈 것입니다. 저는 모든 것을 주었던 수도회 측에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일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최대의 기쁨을 앗아가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제게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에 사용했던 앞치마를 두르고 목각 신발을 신고 소나무 껍질에서 송진을 얻으러 어머니와 함께 나설 것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사랑만을 가르칠 것입니다. 폭력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아이는 저와 더불어 용서야말로 유일하게 인류에게 영예를 주는 위대한 것이라는 점을 증언할 것입니다.
이 글은 필리핀에 유학 중인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인 이냐시오 수사가 고통 받고 있는 이들과의 연대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글을 읽고 감명을 받아 번역해 본사로 보내온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