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금주의 복음단상] 91 소경이 감히 눈을 떠?/방윤석 신부

방윤석 신부ㆍ대전교구 홍보국장
입력일 2017-07-27 16:21:29 수정일 2017-07-27 16:21:29 발행일 1993-03-21 제 1847호 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사순 제4주일(요한 9, 1~11)
오늘 강론의 주제는 어둠과 빛의 대립상태에서 빛이 어두움을 이긴다는 내용이다. 오늘 복음은 굉장히 길다. 중간 중간에 괄호를 넣어서 생략한 곳이 많다. 그러나 등장인물로 축소하면 예수님과 태생소경과 유다인들이다.

우선 예수님과 소경에 대해 언급하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생소경을 만났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태생소경이 그대로 하니까 눈을 뜨게 되었다.

소경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예수님 지나시는 길옆에서 구걸을 하다가 눈을 뜨는 행운을 얻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눈에 침으로 진흙을 개어 바른다. 이것은 기분 나쁜 행동이다. 눈 못 뜬 것만도 서러운데 오히려 완전히 눈을 봉하는 행위다. 만약 그 소경이 심통이 나서 떠나 버렸으면 그는 영영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실로암 연못까지 전에는 10분에 갔다면 진흙 때문에 앞이 더 어두워 30분정도 더 더듬거리면서 가야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곱새기지 않고 연못으로 갔다. 결국 그는 빛을 보게 되었다. 오늘의 주제는 어두움에 대립하여 이를 뚫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는 기특하게도 영혼의 눈까지 뜨게 된다. 오늘 복음 뒷부분은 이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 소경이 눈을 뜨게 되니까 만나는 사람마다『누가 네 눈을 뜨게 해줬느냐?』고 물어온다. 처음에는「예수라는 분」이라고 대답한다. 다음에는「예언자」라고 하며 다음에는「하느님이 보내신 분」이라고 말한다. 조금씩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회당에서 쫓겨난 후 예수님을 만나자 드디어「주님」이라고 고백하며 무릎을 꿇는다. 이렇게 예수님께 대한 신앙이 발전한다. 영혼의 눈이 완전히 뜨인 것이다.

태생소경이 눈을 뜬 과정을 어디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예비자들께 비교할 수 있겠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상태, 어두움의 상태, 즉 하느님을 볼 수 없었던 상태였다가 점점 예수님을 알게 됨으로 인해 신앙의 눈을 뜨게 되는 상태로 변하는 예비자들의 과정은 그 소경의 과정과 같다. 인도자, 지도자는 결국 실로암 연못 정도의 역할을 한 셈이다. 실로암 연못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뜨게 하신 것이다.

동네 유대인들을 살펴보자. 참 고약하다. 이들에겐 아직도 어두움이 짙게 깔려 있다. 그들은 신앙인들이었다. 그러나 아집과 고집으로 눈이 멀어있던 사람들이었다. 소경에게 시비를 건다. 같은 동네사람인데도 말이다.『네가 눈을 떴다면서? 누가 네 눈을 뜨게 해주더냐?』

생각해 보라. 태생소경이 눈을 떴으면 동네사람들이 진심으로 축하를 해줘야할게 아닌가? 그런데 축하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유다인들은 이번에는 예수님께 트집을 잡는다. 왜 하필 안식일 날 파공을 어겨가면서 소경의 눈을 고쳤느냐고 따진다. 왜 노동을 했느냐는 것이다. 그 노동이란 것은 첫째로 침뱉고, 둘째로 손으로 진흙을 개서, 셋째로 소경의 눈에 발라준 것인데 이것이 안식일의 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원 세상에!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는가? 이런 썩어빠진 정신 상태로, 어두움에서 안주하려는 정신상태로 예수님을 탄핵하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안식일의 주인은 나다. 안식일은 인간이 일하는 날이 아니다. 하느님이 일하는 날이다. 내가 하느님으로서 안식일에 흙장난 좀 했기로서니 그것 가지고 시비 거는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고 강조하신다.

결론을 내리자. 오늘의 복음은 어두움 속에 눌러앉아만 있던 소경이 어둠을 깨고 빛으로 튀어나간 경위와 그의 신앙성숙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의 복음말씀을 통하여 두 가지를 반성하자.

하나는 구조적이고 공적인 어두움이다. 모든 분야에 있다면 이것을 깨트리고 빛의 방향으로 튀어나갈 수는 없는지? 어두움이 짙게 깔려있다. 이는 너무도 짙은 어두움이라 섣불리 뚫고 빛 속으로 나가기가 힘들 것 같다.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한다고 했지만 과연 얼마나 공개할까? 벌써 축소하는 선으로 후퇴하고 있다.

이번에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살펴보자. 우리 개인들이 가진 어두움은 없을까? 우리의 얼굴을 계속 어둡게 하는 것은 없는지? 사순절은 자기반성의 시기, 피정의 시기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밤이 오면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세상의 빛이다』이 빛을 향해 튀어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 신자들이 사순절 동안 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이다.

방윤석 신부ㆍ대전교구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