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 성 베르뇌 주교(1814~1866)의 순교 사실을 드라마(희곡)로 작품화한 영문판 초판이 공개됐다.
「종교와 조국 또는 조선의 순교자들」(RELIGION AND FATHERLAND OR, The Martyrs of Corea)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이탈리아 빌라노바 태생의 안토니오 이솔레리(Antonio Isoleri) 신부(1845~1932)가 미국 필라델피아 D.J. 갤러거 출판사에서 1887년 발간한 것으로 해외 고서적을 취급하는 ‘아트뱅크’ 윤형원(68) 대표가 발견했다. 윤형원 대표는 “하루 2~3회씩 해외의 주요 고서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우연히 찾은 자료”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조선의 순교자들」은 한반도를 소재로 서구어로 쓰인 첫 문학작품이라는 데 큰 의미를 지닌다”며 “이전까지는 1892년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펴낸 「Printemps Parfume」(봄의 향기)이 최초의 서구어 문학작품으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조선의 순교자들」은 모두 53쪽 분량으로 3쪽에 이솔레리 신부가 희곡을 쓰고(A Drama, by the Rev. Antonio Isoleri) 작가 자신이 이탈리아 원문에서 영어로 번역했다고 명기돼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어 원본이 언제 출판됐는지는 영문판에 기재돼 있지 않으며 이솔레리 신부가 어떤 자료를 근거로 조선에서 발생한 병인박해 사건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극으로 구성할 수 있었는지는 규명이 필요하다.
「조선의 순교자들」은 베르뇌 주교가 새남터에서 순교한 1866년 3월 7일 저녁기도에서 3월 8일 저녁기도까지의 이틀을 시간적 배경으로, 서울과 서울 인근 외곽을 장소적 배경으로 한다. 장면 구성은 제1장 ‘왕궁에서’, 제2장 ‘신자 홍봉주(영문판에는 Hong-pong-tjion으로 오기, 1856년 베르뇌 주교의 조선 입국을 안내함) 토마스의 집에서’, 제3장 ‘의금부 법정에서’, 제4장 ‘감옥에서’, 제5장 ‘서울의 도성 밖 네거리와 새남터로 향하는 길에서’로 짜여졌다.
등장인물로는 베르뇌 주교와 함께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브르트니에르·도리·볼리외 신부, 홍봉주와 고위관료 신자 남 지오바니, 판서 김병학, 군인들, 이교도들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인물 소개면 각주에 법정 관리 막(MAK, PAK의 오기로 보임)을 제외하고 모두 실존 인물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희곡은 제1장 시작에 앞서 1863년(영문판에는 1864년으로 오기) 철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한 후 베르뇌 주교는 오래지 않아 박해의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는 시대적 배경을 묘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