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평생동안 슬하의 세 아들을 하느님 대전에 봉헌하고 묵묵히 기도로 뒷받침했던 한 모정(母情)은 선종하는 순간까지 사제들을 위한 사랑과 희생으로 이어졌다.
지난 12월 7일 오후 6시 혜화동성당에서 마련된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염수정 신부의 사제서품 은경축 행사에서는 염신부의 사제서품 사반세기를 기념하는 기쁨과 함께 염신부의 모친 고(故) 백금월(수산나) 여사가 남긴 아름다운 미담이 소개돼 참석신자들의 마음을 잔잔한 감동으로 이끌었다.
이날 염수정 신부의 큰형 염수운(루까)씨는 염신부의 은경축을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지난 11월 30일 하느님품에 안긴 고 백여사의 평소 의향에 따라 장례 조의금으로 모아진 약3천2백여만원의 성금을 6남매를 대표, 교구 사제양성후원기금으로 봉헌했다.
이날 은경축행사에는 김수환 추기경, 김옥균 주교, 최창무 주교 등과 함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백남익 본시뇰, 정의채, 백민관, 임덕일 신부 등 은사선배 동창 후배신부들과 1천여명의 신자들이 참석, 염신부의 은경축을 축하와 더불어 모친의 사제를 위한 기도와 희생의 삶이 또 다른 사제성소 육성으로 꽃피워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자리는 둘째동생 염수완 신부(역촌동본당 주임) 막내동생 염수의 신부(혜화동본당 주임)가 형님신부를 위해 마련한 자리여서 더욱 의미를 깊게했다.
염수정 신부는 축하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사제생활과 관련된 모친과의 일화를 소개, 「본인을 비롯 그후 두 동생이 잉태될때 마다 어머니는 하느님께 사제로 봉헌하겠다는 기도를 하셨다」며「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것은 막내 염수의 신부가 신품성사를 받은 날 저녁이었다」고 회고했다.
「내가 소원했던 것을 오늘 하느님이 다 이루어주셨다」는 말로 그간 혼자서 세 아들이 사제되기를 열망하며 기도했던 것을 털어놓았다는 것. 이때 염수정 신부는 사제생활을 한지 10년이 지났던 때였는데「마치 뒷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고 당시의 느낌을 들려줬다. 염신부는 사제가되기 이전에도 어머니는 한번도 신학교에 갈것을 권한 적이 없었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면서「이러한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은 사제가 자신의 힘이 아니라 기도의 힘으로 산다는 것을 실감케 했으며 어머니도 그 힘중의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세아들이 사제로 하느님께 봉헌된 이후에도 고 백금월 여사는 늘 사제양성에 관심을 보였으며 후암동성당 감실 제작을 위해 평소 자신의 가장 귀한 물건으로 지니고 있던 은비녀와 혼인 은쌍가락지를 바친 일화도 남겼다.
「뚜렷한 교회활동을 한적은 없었으나 27년간을 프란치스꼬 재속3회원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지극히 평범한 신앙생활을 실천하시고 묵묵히 기도하셨던 분」이라고 염수정 신부는 모친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어머니의 이러한 기도와 사랑이 사제성소에 대한 새로움과 더욱 큰힘으로 다가온다」고 덧붙인 염신부는「은경축을 맞아 새로 신품받는 마음으로 새 신부가 되어 살겠다」며「좀 더 바른자세로 살아갈 것과 검불같은 모습이지만 하느님께서 살라버리시어 뜻대로 쓰시기를 바랄뿐」이라고 사제서품 25주년 소감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