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모어는 英國「런던」에서 출생했으며 그 곳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캔터베리」의 대주교 슬하에서 시종으로 일했다.
이후 그는 법학을 공부했으며 결혼 후에도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가족과 행복한 삶을 영위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아내는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모어는 어린 4남매를 위해 재혼했다.
당시의 국왕 헨리 8세는 모어를 영국의 재상으로 임명했는데 이는 국왕 다음의 높은 지위에 해당됐다.
재상에 임명된 모어는 영국의 법을 집행했으며 특히 불법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데 힘썼다.
한번은 모어가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중에 헨리 국왕이 그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국왕의 호출 명령을 받은 모어는 그러나 미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 대신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공경 하올 국왕 폐하, 미사가 끝나는 대로 명령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 당시 헨리 국왕은 왕비와의 이혼 허가를 영국의 교회 당국이 허락해 줄 것을 바랐는데 왜냐하면 교황은 교회 법상 헨리 국왕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토마스 모어도 국왕의 이혼 허가 법에 대해 반대의 입당이었으며 결국 재상 자리를 박탈당하고 구금됐다.
재판은 그에게 거짓 증언으로 불리하게 진행돼 사형을 언도했다. 모어는 참수형을 당하기 전까지도 왕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축일은 6월 22일이며 법률가들의 수호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