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복음해설] 118. “너의 죄를 용서받았다” /김구인 신부

김구인 신부ㆍ요한보스꼬ㆍ베네딕또회
입력일 2011-05-27 14:28:10 수정일 2011-05-27 14:28:10 발행일 1983-06-12 제 135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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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까7장36절~50절>
연중 제11주일

죄는 자신과 타인 하느님까지 거부
「용서를 청할때」용서받을 수 있다
오늘 복음은 죄를 많이 지은 여인과 바리사이파 사람과 예수니, 그리고 첫째 독서에서도 다윗 임금과 예언자 나단 그리고 하느님 사이에 극적인 관계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행실이 나쁜 여자」의 행동과 당신을 초대해 준 바리사이파 사람 자신의 행동을 비교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죄녀와 예수님 간의 만남은 사랑과 용서가 오갔으며 그래서 믿음 안에서 구원을 받는 반면 바리사이파 사람은 예수님을 초대하였지만 자기 스스로 의인으로 자부하고 하느님을 믿고 있다는 자만을 가지고 결국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부유한 사람으로 드러내었다. 이 바리사이파 사람의 태도는 흔히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태도임을 체험한다. 그리고 구원은 자신을 가난한 사람으로 느끼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많은 죄를 지었지만「극진한 사랑」을 지녔기 때문에 죄의 용서를 받는 죄녀의 모습은 다시 임금 다윗에게서 볼수 있다.

세력을 가진 임금으로서 휘하의 장군을 적의 칼에 죽게 만들고 그의 아내를 빼앗은 말할 수없는 큰 죄를 지었지만 나단 예언자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체하지 않고『내가 하느님께 죄를 지었소.』하면서 죄지었음을 인정한다.

이때에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분이 되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만이 죄를 없애 주실 수 있는데 바로 오늘 죄녀를 예수께서 용서해 주신다. 바로 죄를 용서하여 주신 그분은 하느님이신 것이다.

용서하여 주시는 하느님 너무나도 크신 사랑을 지니신 하느님의 볼 수 있는 모습이 바로 예수 자신이시다.

세상에는 온갖 단절과 소외, 불통과 고립이있다.

부부간에 형제 자매간에 가족 사이에 그룹과 그룹 사이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 사소한 다룸에서부터 무기, 그것도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핵무기를 가지고 전쟁으로까지 폭발해 버리는 분열이있다. 자기 자신에 진실하지 못하여 분열되면 다른 사람들과도 서먹해질 뿐 아니라 소외되고 마침내 하느님과도 멀어지게 된다.

이 모든 분열, 소외, 단절, 불통의 뿌리에는 죄라는 묘한 원인이 있다.

죄는 결국 자신의 죽음을 불러오고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도 거부하게 되고 마침내 하느님을 거부하게 된다. 임금 다윗에게 하느님은 어찌하여『너는 나를 얕보며 눈에 거슬리는 짓을 했으냐?』는 책망을 하신다. 죄를 짓는 것은 하느님을 얕보고 거부하는 짓이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이러한 온갖 분열을 없애시려고 오셨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주러 오신 것이다. 자신의 삶의 원동력, 생명의 원천은 바로 하느님이시며 환희와 기쁨의 원천이 되시는 분도 근본적으로 하느님이심을 깨우쳐 주신다. 용서받을 수 있는 근거는 용서를 청하는 마음, 자만하지 않고 가난한 자로 자처하면서 사랑의 실행을 서두르는 마음이다. 모든 외적 단절과 소외는 내적 소외와 분열에 기인한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 근본적인 치료를 하셔서「인간의 구원자」로 오신다.

오늘 예수는「거룩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죄인을 용납하지 못하리라는 허상을 여지없이 깨뜨리신다. 실생활에서 어려움을 동반하고 있는 얘기이지만「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임을 보여준다. 용서받고 일치의 삶, 조화를 이루는 생활 그리고 서로 통하는 삶을 이룩하기 위해서 물론 예수ㆍ그리스도를 만나야 하겠고 무엇보다 자신이 용서받을 것이 있는 가난한 사람임을 의식하면서 사랑과 용기 있는 행동을 개시해야겠다.

우리는 매일도 몇 번씩『우리에게 잘 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를 외운다.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남을 용서할 수밖에 없겠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죄의 값으로 당신 아들을 보내셨도다.』

김구인 신부ㆍ요한보스꼬ㆍ베네딕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