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고(故)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 결혼식 올린 성당서 장례식

입력일 2011-05-16 15:45:18 수정일 2011-05-16 15:45:18 발행일 1982-10-10 제 1325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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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에공 고개 떨군체 명인
세계각국서 8백여 조문객 참석
“인간적·종교적으로 보기드문 인물” 브랭 대주교
고향「필라델피아」서도 장례미사
지난 9월 18일 모나코 성당에서는 前 미국 영화배우이자 이 나라의 왕비인 그레이스 켈리의 장례식이 장엄하게 거행됐다. 故 그레이스 왕비는 지난 9월 13일 딸 스테파니 공주를 태우고 프랑스의 니스 근교를 지나가다가 뇌일혈을 일으켜 충돌 사고를 낸 뒤 스테파니 공주와 함께 입원중이었는데, 하루 뒤인 14일 다시 뇌일혈을 일으켜 52세 사망했다.

그레이스 왕비는 미국「필라델피아」에서 백만장자의 딸로 태어나 26년전인 1956년 유럽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모나코공국의 왕 례이니에 공과 결혼하면서 그 동안 인기와 사랑을 받았던「헐리우드」의 은막에서 물러났었다.

이 날 장례식에서 샤를 르브랭 모나코 대주교는『그레이스 왕비는 인간적인 면에서나 종교적인 면에서나 보기드문 사람이었다』고 고인을 추도했다.

올해 59세인 레이니에 공은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고개를 숙인채 눈물을 흘렸고, 유자녀로는 세자녀 중 알버트 왕자와 캐톨라인 공주가 참석했다. 스테파니 공주는 자동차 사고때 입은 상처로 아직 입원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장례식은 거행된 모나코 성당의 바로 그녀가 결혼한 곳이며, 또한 그 자녀들이 세례를 받은 곳이었다.

한편 장례식에는 8백여 명의 조문객이 참여했는데 각 국 대표들과 유럽의 여러 귀족 및 왕족들로 로마 교황청 사무국 대표인 쟈끄마르뗑 주교가 요한 바오로 2세의 대리로 참석했다.

브랭 대주교는『왕비가 혼수 상태에서 갑자기 죽어 삶과 고통, 이별과 죽음에의 질문에 대해 미처 대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왕비의 신앙심은 공적으로 서는 물론 자기 본연의 성품으로 보나 본받을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왕비가 태어난「필라델피아」에서는 9월 17일「필라델피아」의 죤 크톨 추기경이 성베드로 바오로성당에서 집전한 추도미사에는 그녀의 가족들을 앞세우고 2천여 명의 문상객이 몰려 들었다.

크톨 추기경은 강론에서 지난 1976년「필라델피아」에서 열렸던 국제성체 회의때 레이니에 공과 그레이스 왕비도 강연자로 초청했는데,『왕비가 일상생활에서 참신앙을 실천하며 자기의 배우자와 자녀들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좋은 아내이자 어머니였으며 또한 사랑받고 존경받는 것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초청했다고 말했다.

크톨 추기경의 강론에서 처럼「왕비의 우아한 아름다움과 활동적인 역량」을 지녔던「아내이자 어머니」였던 그녀의 신앙심은 작으나마 가톨릭이 우세한 모나코 공국의 왕비라는 공적인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자기 본래가 독실한 신앙을 지닌 성품인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로자리의 기적을 영화로 만들때 그레이스 왕비에게 해설을 부탁한 페트릭 페이튼 성십자회 신부는 지난 6월「런던」과「로마」에서 다시 왕비와 두편의 영화를 찍었다. 페이튼 신부는 로자리 가족 십자군과 가족극장 제작회를 창설, 대표로 일하는 77세의 신부로, 2년전 가족극장영화인「부활」에서 그레이스 왕비와 일한 이래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부활」은 56년 은퇴 후 그레이스 왕비가 처음 출연한 영화로「뉴욕」과「헐리우드」두 곳에서 영화상을 타는등 성공을 거두자 페이튼 신부는 다른 두 편에도 출연을 부탁 했던 것이다.

페이튼 신부는 로자리의 기적 이후 1백50년을 10년단위로 열다섯 편의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계획을 들은 그레이스 왕비는『로자리에 대해 무엇인가 할 수 있기를 언제나 바래왔다』면서「로자리의 영광을 기념 할만한 장미화원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가 하면 왕비는 로자리 가족 운동이 일요일 라디오 프로로 방송될 수 있도록 주선 해주기도 했고 페이튼 신부의 요청에 따라 영화 촬영을 위해 사흘을 더 시간을 내기도 했다.

「바티깐」에서 영화를 촬영하면서 왕비의 신앙심을 뚜렷이 보았다는 페이튼 신부는 그레이스 왕비의 신앙을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