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단연 석달 열흘째/정달영 9

정달영ㆍ언론인ㆍ서울 연희동 본당
입력일 2011-05-10 14:38:39 수정일 2011-05-10 14:38:39 발행일 1982-06-06 제 1308호 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담배를 끊었다. 끊은지 석 달 열흘이 된다.

「끊었다」고 감히 쓰고 있지만, 이 말이 활자화 되었을 무렵에는「다시 피우는」사태가 되지 않을는지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남아있다. 단연(斷煙) 1백일이 지나도록 아직도 자신감이 없다는 뜻이다.

담배를 끊는다는 일은 본래 작심 삼일이랬는데 석달하고도 열흘을 견디었으면 이제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만한 때이다. 그런데도 마음 약한 구석을 남겨두는 것은 웬 까닭인지 나 자신도 잘 알수가 없다.

담배를 끊었다고 해서 무슨「금연학교」를 다녔다거나 특별한「당연작전」을 폈다고나「비방」을 썼다거나 한 것이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길로 한다는 소리가『오늘부터 담배나 끊어볼까』였다.

「어느날」이라고 했으나,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그날은 재의 수요일(聖灰水曜日)이었다.

전날 밤은 여전히 과음(過飮)에 새벽 귀가(歸家)였고, 그래서 아침에 눈을 떴을때는 우선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더군다나 십자고상위에서 수난하시는, 지금 내 몰골을 내려다 보실 그 분께는 무슨 얼굴이 남아 있어 고개를 들것인가.

입안이 소태처럼 썼다. 그러다가 불쑥『끊어볼까』하고,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독백을 뱉어버린 것이다.

비록『끊겠습니다』아닌『끊어볼까』였지만, 그것은 내 나름대로의 약속이었던 셈이다. 수난하시는 그분에게 대한 약속, 가족에게 대한 약속, 친지와 동료들에게 대한 약속, 그리고 나 자신에게 대한 약속…….

그것이 단호하게『끊겠습니다』가 못되고 무덤덤하게『끊어볼까』로 된 것은 결단성 없는 성격 탓이었을 뿐이다.

『끊어볼까』는 어쨌든 그 순간부터 결행이 시작되였다. 은단을 털어 넣어 입안을 심심치 않게 한다거나 포도알을 굴려 손아귀를 쉬지 않게 하는 등의 사전 준비는 전혀 없었다. 눈앞에 있는 담배갑이나 라이터도 모두 치우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끊은 것이다. 담배갑과 라이터가 가까이 있는 편이 오히려 마음을 굳히는데 효과적이었는지 모른다.

첫 날은 만나는 사람 마다에게「광고」를 했다. 남을 향해 떠듬으로써 약해지려는 나의 결심을 지탱해보자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나의 결심을 지탱해보자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힘이 들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사고의 집중이었다. 특히 원고를 쓸때는 붓이 나가지를 않았다. 머리속이 마치 수세미처럼 부풀어 올라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바보가 되는 것 같다』고, 혼잣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 했다.

그러는 사이 동료ㆍ친지들이 보여준 반응은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였다.

- 웃긴다. 며칠이나 갈까. 그렇지만 애쓰는걸 보니 딱하군. 뭘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먹고 싶은 걸 참는담.

- 놀랍다. 내가 감시자가 되어 계속 격려할 테니 결심을 꺾지 말라. 한번 끊어보라. 박수를 보낸다.

지나간 1백일 동안 여러차례의「위기」가 있었다. 매 순간마다 유혹을 받았다. 생각하면 27년만의「끊음」이다.

바로 지금도 담배 한대 맛있게 피우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다. 나는 이 유혹을 뱀 보듯 피하는 대신에,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참아 견딜 수 있는 가를 스스로 관찰한다. 인내는 남을 향했을 때 더욱 요긴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자신감은 털끝 만큼도 없다.

그러나 석달 열흘의「끊음」이 밑거름이 되어 그 분을 닮는데 필요한 또 다른「끊음」에로 무모하게 결행(決行)해 나가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엉뚱하게 기대해 본다.

정달영ㆍ언론인ㆍ서울 연희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