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한국 외방 선교회 소속 김진형 신부가 임지인 파푸아 뉴기니아에 도착, 첫 날을 보내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한국외방 선교회를 창설한 최재선 주교에게 보내온 편지 내용이다. <편집자>
존경하올 최 주교님께
안녕하신지요?
그동안 뜨거운 정성과 기도에 감사 드립니다. 저희들은 19일 성 요셉 축일을 기하여「마닐라」를 출발,「홍콩」「시도느」를 거쳐 어제 오후 2시 이곳 파푸아뉴기니아의 수도「폴스토몰스비」에 내렸읍니다. 가는 곳마다 한국 신자들의 열렬한 성원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에 도착한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디디며 우리를 섭리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기쁨의 기도를 올렸읍니다. <中略>
우리는 우선 비행장 근처에 있는 SVD숙소에 임시 짐을 내려놓고 교황 대사관에 올라가 인사를 드렸읍니다. 대사님인 프란치스꼬 테니스 대주교님은 우리의 방문을 미리 계획하고 기다렸다고 하시면서 친절히 뉴기니아의 종교 상황과 더불어 말씀을 하시었읍니다. 선교사가 끊어지고 있는 요즈음 한국에서 젊은 사제 4명이 왔다는 소식은 큰 관심있는 일이었읍니다.
저녁때쯤 되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워낙 고단한터라 성무일도를 하자마자 3칸 남짓한 마루방에서 쓰러져 깊은 잠을 잤읍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날씨가 맑게 개었고 휴즈 신부님이 커피를 끓이시며 아침 식사 준비를 하셨읍니다. 오후에는 민니 신부님이 우리에게「폴스토 몰스비」를 소개하셨읍니다.
해변가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인구 12만명에 생활이 필요한 기본 시설을 갖추고 있는것 같았읍니다. 바닷가로 빌딩 몇 개가 있었는데 대사관과 관광객이 주로 사용한다고 하셨읍니다. 이 건물들외에는 지상에서 2m 가량 띄워서 지어진 집들이 띄엄 띄엄 넓은 공간을 메꾸고 있었읍니다.
신부님이 맨 먼저 안내 하신 곳은 동창 신부님이 계신 본당이었읍니다. 언뜻 보기에는 한 여름철 비맞은 원두막과 비슷 했읍니다. 바닷가에 몇 개의 통나무를 막아 세우고 널판지 조각으로 비를 막았읍니다. 통나무 2개를 엮어 만든 다리를 밟고 올라서면서 설겆이를 하고 계신 본당신부님을 뵈을수 있었읍니다. 신부님은 우리의 소개를 받으시고는 손을 꼬옥 잡고 눈시울을 적셨읍니다.
실내를 군데 군데 막아 성당 겸 응접실 · 침실 겸 식당 그리고 화장실로 사용하셨읍니다. 이곳 저곳을 들여다 보아도 거적 깔린 침대하나 걸상 넷 누렇게 바랜 그릇 몇 개가 전부였읍니다. 양손을 펴들고 못 박히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운데 기둥에 유난히도 크게 매달려 있었읍니다. 우리는 어안이 벙벙하여 정신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었읍니다. 그러나 웬지 그 곳에 더 있고 싶어졌고 마음 한 구석에는 찬란한 기쁨이 솟아 오름을 느꼈읍니다. 우리가 갈망하여 찾아왔던 그분의 삶이 바로 여기에 있고 그 사실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中略>
일반 서민 주택은 마른풀과 대나무 종류를 통나무에 엮어서 만들 었읍니다.
방은 하나 였읍니다. 식구가 많았고 풀잎으로 엮은 자리 위에서 먹고 자고 쉬고 하였읍니다. 저는 이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 땅에 저의 뼈가 묻힐거라는 생각을 했읍니다. <中略>
얼마후 우리는 양철 지붕을 한 현대식 마을 중심가로 들어 섰읍니다. 거기에는 3채의 교실로 이루어진 국민학교가 있었읍니다. 좋은 학교인듯 했읍니다. 학생들은 웰컴(Welcome) 노래를 불러 우리를 환영했읍니다. 흰 수도복을 입은 까만수녀님이 산수공부를 가르치고 계셨읍니다. 신부님은 손뼉을 쳐 분위기를 잡으신다음『여기 오신 신부님의 나라를 아시는분 계셔요?』하셨읍니다. 7명의 어린이가 일어나 차이니스 · 자폐니스 · 홍콩 · 필리핀 · 싱가폴하였지만 마지막 어린이까지 맞추질 못했읍니다.
제가 흑판에「Korea 한국」하고 쓰자 흰 이를 내놓고 서로 마주보며 빙그레 웃었읍니다. 이 어린이들의 미소에는 우리의 영혼이 숨쉴 자리가 있었읍니다.
밖이 한산한 일자형 병원 건물을 지나 주민 시장을 잠깐 불 기회가 있었는데 땅에 나무 열매를 놓고 바꾸기도 하고 돈으로 사고 팔기도 하였읍니다.
3시 쯤이었읍니다. 너무나 더워 윗옷을 벗고 땀을 닦았읍니다. 적도에 근접해있는 이 곳은 비가 올때와 안올때 두계절로 나누어지며 항상 이렇게 덥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이 이 무더운 날씨와 겹치는 말라리아병에 걸려, 생명을 잃었다고도 합니다.
또한 숲과 늪에 뱀과 악어, 바다에 상어는 가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답니다.
오후 5시30분 신학교에서 우리를 환영하는 미사가 있었읍니다. 벨진 주교님과 신부님 · 수녀님 · 신학생들이 함께 참석했읍니다. 이 신학교는 하나 있는 대신학교인데 신학생은 1백20명입니다. 여러 수도 및 선교단체 · 교구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읍니다.
저녁 식사로는 고구마와 쌀밥을 먹었읍니다.
이곳 주민의 주식은 고구마와 나무 열매이고 음료수는 빗물인데 쌀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들여와 일부 도시에서 사용한다고 합니다.
식사 후에는 주교님의 강의에 이어 토론 시간으로 계속 되었읍니다. 2시간 진행된 이 모임에서 사회와 교회의 중심은 그 누구도 아닌 그리스도임을 알수 있었읍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오직 형제와 친구로서 서로 존경하고 고통에 동참하며 살아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읍니다.
10시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읍니다. 하루의 은총을 감사하며 내일「마당」으로 떠나갈 준비를 했읍니다. 잠자리에 누우며 낮에 만난 사람 한분 한 분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기억 했읍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벌거숭이 자신의 실상을 만나고 싶었읍니다. 흰 옷 속에 감춰온 죄의 때를 쏟아지는 빗물로 깨끗이 씻고 싶었읍니다.
우리는 이렇게 첫날은 평범하게 주님의 은총안에서 보내며 보고 듣고 느꼈읍니다.
주교님의 건강과 안녕을 빕니다.
1982년 3월 25일(목)파푸아 뉴기니아의 수도「폴스토 몰스비」에서
김진형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