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그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에서는 여러가지 꽃과 관련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축제들이 있었다.
유럽의 사람들은 자연의 어머니 여신에게 5월에 꽃과 춤을 통해 자신들이 가진 자연주의적 정서를 표현하였다. 비록 이런 풍습은 이교도적인 요소가 진하다 하더라도 봄을 경축하는 것으로, 그런 과정에서 문학과 예술이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중요한 달을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 신자들은 성모님과 연결지어 생각하기 시작했고, 「꽃같으신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즐겨부르게 되었다.
성모님의 달로서의 5월을 성대하게 지내기 시작한 것은 중세시대였다.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을 축제로 발전시킨 것은 스페인의 카스틸리아와 레온의 왕이었던 알퐁소 10세(1284년 사망)였다. 그는 자신이 지은 여러가지 노래를 통해 5월을 성모님께 봉헌하였으며 그 이후에 이 왕의 영향으로 문학계에서도 이런 종류의 헌시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후 17세기까지 성모 성월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된다. 피에슬레에 있던 도미니꼬회 수련원에서는 수련자들이 공동체안에서 성모성월동안 성모님께 대해 기도를 드렸다. 이 영향은 여러지역에 퍼지게 되고 각 지역에 따라 성모 호칭 기도를 만들어 내게 된다. 우리에게 잘알려진 호칭기도는 라우레타네 호칭기도로 이탈리아 로레토의 성모 성지를 방문하면서 신자들이 바치던 것이다.
이렇게 기도를 통해 신심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성모 성월로 인하여 성모님의 삶과 덕을 본받기 위한 여러가지 신심행사들이 줄지어 나타나게 되었으며 성직자들의 기도와 강론, 신자들이 만들어 낸 찬가와 선행의 실천이 그러한 정신으로 이루어 지게 되었다.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성모신심은 유럽만이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 나갔고 1854년의 원죄없는 잉태 교리 선포는 이런 선교 지역에 더욱 성모신심이 발전할 가능성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더구나 이 교리는 인간만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인문주의자들에게 인간은 성모님처럼 하느님에 의해서만 완전해 질 수 있다는 교리를 천명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에 성모님의 잘은 교회의 정책적인 지지와 보호를 받기도 하였다. 따라서 교황님들도 성모님의 달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현하는 편지와 문헌들을 발표하였다.(특히 레오 13세와 비오 12세)
이제 5월은 전세계 어니서나 성모님을 더욱 깊이 묵상하면서 인간이면서 결정적인 구원에 이르신 그분의 덕을 기리고 전구를 청하는 달로 교회가 축제의 분위기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나승구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수원교구 교구장 비서 정연혁 신부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