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살해피해자가족 모임 ‘해밀’, 사랑방 마련 잔치

임양미 기자
입력일 2009-12-29 09:32:00 수정일 2009-12-29 09:32:00 발행일 2010-01-03 제 2679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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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상처 함께 나누며 치유할 보금자리”
해밀모임 잔칫날, 이영우 신부와 살해피해자가족들이 축하주를 나누고 있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3대독자를 잃었던 그날 이후 고정원씨의 마음의 하늘엔 비가 그친 날이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을 잃은 배요셉씨와 김마리안나씨 부부에게도 먹구름이 가실 날이 없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호순 사건’으로 큰딸을 잃은 이씨 가정에도 ‘빛의 사람들’의 손길이 닿기 전까지 웃음이 사라졌었다. ‘그날’ 이후 세상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가족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밀려와 대문을 나서 봐도 갈 곳이 없었다. 끔찍한 살인사건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움츠러들어야 했던 살해피해자가족들. 이들에게 이제 보금자리가 생겼다.

12월 20일 ‘해밀사랑방’이라는 문패가 걸린 서울 삼선동 교정사목센터 ‘빛의 사람들’ 별관 3층, 살해피해자가족모임 ‘해밀’의 조촐한 잔치가 열렸다. ‘해밀’ 가족은 지난 3년간 마땅히 모일 장소가 없어 이곳저곳을 헤매야 했던 떠돌이모임 생활을 접고, 이제 언제든지 찾아와 두 다리 뻗고 마음을 나누고 서로 위로할 수 있는 ‘해밀’만의 사랑방이 생긴 것을 축하했다.

이영우 신부(서울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와 최형규 신부, 안미란 국장 등 교정사목센터 식구들과 해밀 가족들은 모여앉아,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빵을 나눴다. 약밥, 부침개, 치킨 등 음식도 각자 조금씩 마련해왔고, 소주도 한 잔 곁들였다. 취기와 눈물과 웃음의 온기가 사랑방을 감돌자, 한 형제가 입을 열었다.

“살해피해자가족모임을 알게 되기 전까지, 웃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을 알게 돼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끼리 함께 ‘마음여행’을 떠나면서 처음으로 활짝 웃었습니다. ‘우리집’이 생겨서 정말 좋습니다.”

이영우 신부는 “해밀사랑방은 감춰져있는 피해자의 아픔을 나누는 곳”이라면서 “‘해밀’이라는 말처럼 이곳이 피해자들의 마음이 맑게 개도록 돕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양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