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그려 보세요.” 미술치료사의 주문이 떨어지자 노인들은 크레파스를 들고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본다.
수업이 무르익어 갈 즈음, 이제 가망이 없다고 하던 중증 치매 노인이 치료사 옆으로 다가왔다. “나 박수 좀 쳐줘. 내가 배를 그렸어.”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노인은 황금색 배의 색깔까지 생각해냈다.
다들 차도가 없다고 포기했을 때 치매미술치료사 한 사람만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 얻은 인고의 열매였다. 이것이 바로 치매미술치료협회(회장 신현옥)가 하고 있는 일이다.
치매미술치료협회는 치매로 고통 받고 있는 노인들과 그 가족의 삶을 증진시키고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까지 노인들의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협회 소속 미술치료사들이 수시로 치매 노인 보호시설을 방문해 미술치료 수업을 진행한다. 주제를 내주면 자유롭게 그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동그라미 하나도 완전하게 그리지 못하지만 믿고 기다리면 점차 변화가 나타난다. 색채를 인식하고 주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치매는 불치라는 통념을 깨는 순간이다.
치매미술치료협회는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을 위한 ‘건강미술’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협회 부설 영실버아트센터는 지역 노인들의 문화동아리이자 사랑방이다.
미술수업이 시작되면 노인들은 마치 옛날 사랑방에 둘러앉은 것처럼 그림도 그리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눈다.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노인들은 이런 기회가 반갑다. 그림을 그리다가 서로 곁눈질도 하고 각자 그림에 대해 평가도 내리면서 웃음이 끊일 줄 모른다.
치매미술치료활동은 일반 노인들이나 장애우 등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 전공과 달리 신현옥 회장의 임상경험을 통한 실전지식을 교육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러한 활동을 뒷받침해줄 치매미술치료사가 많이 부족하다. 치매미술치료협회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치매미술치료사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김은경 치매미술치료협회 사무국장(영실버아트센터 소장)은 “고령화 사회에 맞춰 치매미술치료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전문적인 치료사는 부족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저희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의: 031-236-1533,1505 치매미술치료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