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일흔넷 나이에 꽃집 창업한 김정지 할머니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4-07-25 02:07:00 수정일 2004-07-25 02:07:00 발행일 2004-07-25 제 240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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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제2의 인생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남산 자락 해방촌, 그 한켠에 자리한 꽃집 「아름드리 꽃」에 들려본 이들이라면 꽃향기에 섞여 풍겨오는 싱그러운 향취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일흔넷,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여생을 즐길 나이에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정지(이사벨라·서울 해방촌본당) 할머니가 바로 이 싱그러움의 주인공이다.

할머니가 꽃집을 연 것은 2000년 1월. 보증을 잘못서 빈털터리가 된 지 꼭 20년만의 일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을 딛고 일어서 전국을 떠돌며 노점행상으로 빚을 청산하고 이제는 편안한 삶에 눈길이 쏠릴 만도 했지만 할머니 뇌리에는 다른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웃을 위해 마음껏 봉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무슨 일을 새롭게 시작하기엔 결코 쉽지 않은 나이, 할머니는 어디서 솟았는지 용기를 냈다. 고령의 나이로도 가능한 일을 찾던 중 눈에 띈 일이 용산여성인력개발센터가 여성가장들을 위해 마련한 「선물포장창업」 과정이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아 곱절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다 할머니의 손재주를 눈여겨본 센터의 지원으로 꽃집을 열게 된 것이다. 막상 일을 벌여놓고 보니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일흔을 넘긴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화분을 나르는 일부터 배달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새벽시장을 찾는 일에서 웬만한 배달은 손수 해결했다. 그래서 아낀 비용은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돌려주었다. 또 분갈이 철이면 꽃값만 받고 분갈이를 해주는 등 수익에 매달리지 않고 정성을 다했다. 이런 노력이 통했음인지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꽃집들 틈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모두가 주님의 도우심 덕이죠. 지나고 보니 20여년 전 눈앞이 캄캄해지는 절망을 맛보게 하신 것도 섭리였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바쁜 와중에도 포장을 하고 배달을 가면서도 기도를 멈출 줄 모른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 365일 꼬박 꽃집 문을 열면서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이웃들의 가정성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밤 1시까지 먼저 간 이를 위해 연도 바치는 일은 빠지는 법이 없다.

꽃집이 자리잡힌 지금은 가게 한쪽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배움의 장으로 내놓고 있다. 올 1월 처음 문을 연 3개월 과정의 꽃방창업반은 벌써 3기를 모집하고 있다.

『헤쳐나가지 못할 절망은 없어요. 용기를 낼 때 희망이 다가올 것입니다』

사랑을 한껏 담은 할머니의 모습에서 해거름에 걸린 아름다운 꽃이 겹쳐 떠올랐다. ※문의=(02)790-4220 김정지 할머니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