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 수도회 탐방] 아우구스띠노회 (상) 창립과 영성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04-01-18 10:34:00 수정일 2004-01-18 10:34:00 발행일 2004-01-18 제 2382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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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한뜻으로 일치추구
겸손과 봉사의 삶 실천 강조
아우구스띠노회 한국지부의 종신서원식 모습.
『주여, 당신께선 인간이 한마음으로 한집에서 살도록 하셨나이다. 우리의 거룩한 결심에 의해 우리가 함께 모여 살고자 하는 뜻을 우리는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성아우구스띠노의 고백록 9권 8장)』.

아우구스티노수도회는 참회자들의 모범과 신앙의 변호자, 또한 탁월한 사목자와 신비가였던 히포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354~430)를 사부로 여기고 그 영성과 수도 규칙서의 정신에 따라 생활하던 수도자들과 은수자들이 통합돼 설립됐다.

공식적인 수도회 역사는 아우구스티노의 생활 양식과 수도회 규칙을 따르는 수천명의 수도자들이 1244년 로마에서 첫 회의를 개최한 뒤 합병을 결정함으로써 시작됐지만 실질적인 수도공동체의 전통은 아우구스띠노와 그의 친구들이 고향인 로마령(領)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 돌아와 그들의 소유를 포기하고 「하느님의 종」으로서 학습과 기도에 전념하기 시작한 4세기 말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91년 사제로 서품된 아우구스띠노는 히포에 있는 정원을 구입, 수도자 공동체를 건설할 수도원을 지었다. 그리고는 사제들을 위한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생활을 병행했다. 이후 아우구스띠노를 따르는 수도적 삶의 형태는 남자 평신도, 여자 평신도, 그리고 수도자와 성직자 등으로 제시됐고 이러한 아우구스띠노의 이상(理想)은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으로 또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수도회는 1244년 첫 합병후 1256년 또 한번의 통합 기회를 맞게된다. 교황 알렉산데르 4세 칙서에 의해 통합 작업을 가진 아우구스티노회는 이때를 기점으로 명실공히 탁발수도자로서의 위치를 얻게됐으며 1327년 교황 요한 22세가 파비아에 있는 성아우구스티노의 무덤 옆 건물을 수도회에 인계함으로써 아우구스티노와 특별한 유대를 지닌 수도회로 인정을 받게됐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영성은 『한마음 한뜻(Anima Una et Cor Unum)』으로 대표된다. 즉 『먼저 자기 자신과의 일치 그리고 이웃과의 일치, 형제들과의 일치, 더 나아가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띠노의 정신과 은수적인 전통에서 유래된 이 영성은 「내향성」「공동체」「그리스도 중심의 삶」「교회에 대한 봉사」등으로 세분화된다.

수도회 영성은 산란한 마음으로 인한 혼란과 불안을 떨쳐버리고 『자신으로 돌아가라』는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내향성(內向性, Interiority)」은 그에 대한 표현을 함축한 것이다. 「공동체 정신」은 『다양성 안의 일치』란 영성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수도회 공동체가 형제애 정신과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이 부분은 이웃에 대한 사도적 봉사와 사랑 봉사의 중요성을 격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의 기초를 보다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수도생활의 궁극적인 모범이며 삶의 표본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그리스도의 모든 점, 특히 겸손과 봉사의 모습을 닮으라고 사람들을 끊임없이 고무시켰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