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쉼터] 북한산지기 대니와 젬마 부부

곽승한 기자
입력일 2003-03-16 10:27:00 수정일 2003-03-16 10:27:00 발행일 2003-03-16 제 2339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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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면 버릴수록 행복은 차곡차곡 쌓입니다
서울 불광동 북한산 입구 구기터널 근방에 정확히 4평짜리 카페 「마운틴」이 있다. 눈에 띄는 간판도 없고 워낙 작아 얼핏 지나치면 보이지도 않는 곳이지만, 이곳은 대니와 젬마 부부의 직장이자 보금자리다.

지동암(다니엘·52).김미순(젬마·45)씨 부부. 이들 부부는 버림으로써 행복해지기 위해 가난한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북한산 자락을 놀이터 삼고, 산짐승들에게서 새 삶을 배우며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 「현대판 신선」이라고나 할까.

대니와 젬마는 결혼한 지 18년여가 흐르는 동안 갖고 있던 것까지 다 버리고 최소의 필요만을 위해 살아왔다. 침실은 꼭 껴안고 자면 꽉 차는 1평 다락방. 재산이라고는 계절에 상관없이 입는 검은 등산복 몇 벌뿐이다. 2개의 배낭이 옷장과 서랍, 핸드백을 대신하고, 집 안의 물건은 모두 재활용품들이다. 가스 버너와 코펠에다 음식을 해먹고 침낭을 이불로 사용하며, 부엌 싱크대의 한 줄기 물로 씻고 빨고 끓여낸다. 카메라가 그들이 갖고 있던 가장 값나가는 물건이었는데, 도둑맞을까봐 전전긍긍하다 그나마 쌀로 바꿔먹었을 정도. 수입이라곤 하루에 7∼8잔 팔리는 커피와 녹차 값이 전부다.

『오래 전부터 청빈한 삶을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실천해보니,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또 없이 살아도 얼마든지 세상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진리도 터득할 수 있었죠』

수도회에 몸담았던 적이 있는 대니는 빈민운동을 펼치며 가난한 삶을 실천했던 사람이다. 세검정본당 주일학교 후배였던 젬마는 평범한 직장 여성이었으나, 그의 솔직 담백하며 진지한 모습에 끌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결심했다.

처음 농촌에서 살던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7년전 당시 정육점 자리를 빌려 지금의 카페 마운틴을 개업했다. 이후 대니와 젬마는 북한산을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집 걱정과 돈 걱정을 모두 잊었다.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행복을 선물했다. 부부는 오늘도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며 산에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카페문을 닫는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저희 부부는 지금 너무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앞으로도 하느님의 진리에 귀 기울이고 양심을 속이지 않으며 착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대니와 젬마 부부. 뭇 사람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공상일지도 모르지만, 이들의 삶은 물질 만능주의에 오염된 우리네 사회에 불어오는 한 줄기 정화의 바람처럼 느껴진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람 냄새나는 아름답고 멋진 삶 살아가길 소망해본다.

곽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