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초남이에서 치명자산까지 동정부부 순교의 길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1-09-16 11:43:00 수정일 2001-09-16 11:43:00 발행일 2001-09-16 제 2267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동정으로 이룬 신앙 순교로 꽃피워
신유박해 순교정신 되살리는 계기
동정부부 삶 한국수도자들의 모범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것이 단지 올해 뿐만은 아니다. 하지만 특별한 때와 의미를 두고 더욱 크고 새로운 성숙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기념해 전국 각 교구에서는 많은 행사와 신앙쇄신을 위한 노력들을 더하고 있다.

신유박해 때 전주교구에서는 20명이 순교했다. 이 중 특히 유항검의 첫째 아들인 유중철(요안, 예전에는 요한이 아니라 요안으로 불렀다)과 이순이(루갈다) 부부는 세계 최초의 동정부부이자 순교자로 눈에 띈다. 전주교구에서는 이들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본받는 계기의 하나로 제1회 요안·루갈다제를 마련했다. 요안·루갈다제를 지내며 특히 동정부부의 삶과 신앙을 살펴볼 수 있는 성지순례 코스를 소개한다. 혼배 이후 4년여동안 동정을 지키며 수도의 자세로 생활해온 초남이 성지에서 순교터인 숲정이, 유해가 안치된 치명자산까지를 따라가본다.

유요안·이루갈다의 하느님 사랑

호남의 첫 신자이자 초대 조선 천주교회의 핵심적인 인물인 유항검의 첫째 아들인 유요안은 여섯살 때 세례를 받았다.

이후 교리공부를 하면서 평생을 동정으로 생활하면서 오로지 하느님을 섬기기로 결심하고, 1795년 방문한 주문모 신부에게 자신의 결심을 알린다.

이루갈다는 전주 이씨 경령군의 후손으로 아버지 이윤하의 8대조부는 지봉 이수광이었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성호 이익의 딸이었다. 또 어머니 권씨는 조선 천주교회 창설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권일신의 누이다.

이루갈다도 주문모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첫영성체를 영한 후 온 정신을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쏟게된다.

이 두 순교자는 각기 첫영성체 이후 하느님과 나눠지지 않으려는 마음,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향해 살고자 하는 방법의 하나로 동정을 선택했다.

하지만 당시의 사회적 배경으로 볼 때 동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자손을 끊고 제사를 잇지못하게 하는 대불효, 인륜을 거스르는 대죄가 됐다.

이 두 젊은이의 뜻을 안 주문모 신부는 두 사람이 희생당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서로 혼배시켜 오누이처럼 지낼 수 있도록 중매에 나섰다.

1798년 부모 앞에서 동정서원을 한 이들 부부는 4년여를 오누이처럼 지내며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피끓는 청춘남여라 동정서원이 무너질뻔한 유혹도 십여번 겪게 되지만 기도의 힘으로 견뎌냈다. 이러한 내용은 루갈다가 옥중에서 친정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 내외 처음 만나던 날에 서로 수절하기로 맹세하니, 평생근심이 일시에 풀려 4년 동안을 형제같이 살매 그 사이에 혹독한 유혹이 몇번 있어 대개 열번이나 거의 무너질뻔 하였사오나, 공경하올 성혈공로로 마귀의 계교를 물리쳤나이다… 다시 또 말씀 드리오니 아무쪼록 근심마옵소서. 이 세상은 헛되고 거짓됨이 옳소이다…』

이들은 고통과 좌절을 그리스도 고통에 동참하는 기회로 생각했으며,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느님의 도움심과 뜻에 따라 견뎌냈다. 수도회도 없던 때의 이들의 모습은 한국 수도자들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두 부부는 동정의 은혜를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마음을 순교로써 다짐했다.

특히 유요안과 이루갈다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임을 잘 인식하고 구체적인 이웃사랑을 펼쳐나갔다. 사랑을 베풀어야하는 첫번째 이웃은 서로 부부가 됐다.

그들은 동정을 지키는 것 외에는 신의와 성실을 바탕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의지했으며, 부모와 가족, 이웃들에게도 극진히 대했다.

이후 신유박해를 맞아 이 부부는 동정의 순교와 신앙의 순교라는 두 가지 영광을 안게 된다.

1801년 9월 17일(음) 유항검이 능지처참으로 순교하고 유요안은 23세의 나이에 전주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시신에서는 「누이에게 부치는 글」이 나왔는데 『나는 누이를 격려하고 권고하고 위로하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는 내용이었다.

이루갈다는 처음에 유배형을 받았으나 『천주를 위해 죽길 원한다』고 항의,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는 분명한 신앙고백으로 선택한 죽음이었다. 12월 28일(음)의 혹한에 숲정이에서 참수당한 이순이의 시신에서는 희 피가 줄줄 흘렀다고 전해진다.

초남이에서 치명자산까지

유항검을 비롯해 유요안·이루갈다 부부의 삶과 영성의 길을 따라가다보면 구체적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호남교회사 연구소 소장 김진소 신부는 『이 부부는 자식이 아니라 사랑을 낳고 기른 분들로 이웃사랑과 수도생활의 모범』이라고 평하며 『부부·가족관계에서부터 신의를 바탕으로 서로를 사랑할 때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사는 삶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부, 가족과 함께 유요안과 이루갈다의 순교영성을 되짚으며 그들이 살고, 순교하고 묻힌 성지를 가본다.

동정부부의 생애를 느낄 수 있는 성지코스.
초남이 성지는 유항검의 생가터로 유요안·이루갈다 부부가 4년여의 동정생활을 한 수도의 장이다. 최근 유항검 일가를 가매장했던 위치와 유항검이 몰래 교리를 가르쳤던 장소가 확인돼 성역화 작업을 준비 중이다. 피정의 집에서는 1박2일 부부피정도 할 수 있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인터체인지에서 전주 쪽으로 좌회전하면 안내표지가 있다.

※연락처=(063)214-5004

숲정이 성지는 조선시대 처형장으로 사용됐다. 이루갈다를 비롯한 유항검 일가족이 이곳에서 순교한 이후 수많은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치명했다. 전주시 금암광장에서 태평로 쪽으로 1km쯤 가면 연조 제조창 사거리, 여기서 우회전해 300m쯤 가면 숲정이가 있다. ※연락처=(063)285-0041

전동성당은 본래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던 사형장으로 한국 최초로 윤지충, 권상연과 유항검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의 하나로 손꼽힌다. ※연락처=(063)284-3222

치명자산은 유항검과 그의 처, 유요안, 이루갈다 를 비롯한 7명의 일가족이 묻혀있다. 원래 초남이 성지 근처 제남리에 가매장된 시신을 1914년 이곳으로 이장했다.

순교정신을 기리기 위해 94년 산 정상 바위 암벽에 세운 산상 기념성당이 있고, 가파른 산길을 걸며 기도하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특히 몽마르뜨 잔디광장에서는 16일까지 요안·루갈다제가 펼쳐진다. ※연락처=(063)285-5755

단체순례도 가능

초남이에서 숲정이까지는 차량으로 약 30분(14km), 걸어서는 약 4시간이 소요된다. 숲정이에서 전동성당까지는 차량으로 약 15분, 걸어서는 50분 가량 걸린다.

단체로 성지순례를 할 경우에는 40명 이상의 인원이 되면 식사를 예약할 수 있다(※문의=(063)285-0041). 숙박을 원할 경우 천호와 나바위 피정의 집을 이용할 수 있다. 천호 피정의 집에서는 요안·루갈다제 기간 동안 1박2일 성지순례 및 피정 코스도 마련하고 있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