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6개 종단 종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사형제도 폐지'를 한 목소리로 외쳤다.
6월 2일 오후2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 모인 천주교, 불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등 6개 종단 500여명의 신자들은 사형제도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이며 야만적인 '보복살인'인지를 되새기면서 정부와 국민을 향해 사형제도를 폐지하는데 힘을 모을 것을 다짐했다.
참석자들은 1부와 2부로 나눠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 말미에 각 종단이 뜻을 모아 작성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 공동성명서'를 채택, 낭독하고 "아무리 가증할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에게라도 치유와 용서를 통한 갱생의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는 사랑과 자비가 절실히 요청된다"고 천명했다.
이날 행사는 지난해부터 꾸준하게 이어져온 국내 각 종단의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연대 활동이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난 첫 결실이라는 측면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각 종단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사형제도 폐지'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고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질 후속 프로그램들에 대해 국민 여론을 환기시키고 이어 올해 안으로 사형폐지를 위한 입법 청원을 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영수 주교 축사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영수 주교는 축사를 통해 "무엇보다 생명의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모든 종교인들이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의무요 책임"이라고 치하하고 이날 행사를 통해 "반드시 좋은 결실이 맺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주교는 이어 "범종교 연합으로 치러지는 이 행사가 종교인들의 인간 존엄성 수호 의지를 널리 표명하고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초석이 될 것"이라며 일회성이나 구호성 외침에 그치지 않고 사형제도 폐지가 이뤄질 때까지 '한 마음'으로 이 운동을 전개할 것을 촉구했다.
=이도행씨 사형수의 삶 토로
이날 행사에는 한때 사형수로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이도행씨가 사형수로서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 토로해 참석자들에게 사형제도의 비인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한없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기어 다니는 미물조차도 가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빼앗긴 적이 없는 사람, 죽음에 가까이 가보지 않은 사람이 자유와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 어렵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사형제도의 결과가 바로 당신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국회의원 84명 서명
현재 사형폐지 특별법안에 서명한 국회의원은 지난 5월 31일 현재 모두 84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정대철 의원은 현재 국회에서 사형폐지를 위한 입법에 나서고 있는 현황에 대해 소개하고 조만간 사형폐지특별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편죽인 사형수 살려달라
이날 행사에서는 자기 남편을 죽여 사형언도를 받은 사형수를 위해 탄원서를 보낸 한 피해자 가족의 사연이 낭독돼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이 부인은 탄원서에서 남편을 죽인 범인의 죄가 크기는 하지만, 그가 사형에 처해짐으로써 또 한 가정이 자신이 겪은 것과 똑같은 슬픔과 비통을 겪는 것은 또 하나의 비극이라며 오히려 범인이 평생 속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 범종교연합 공동성명서 요지
“사형제도 폐지, 우리 모두의 힘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전세계에서 뜻있는 이들이 사형제도를 폐지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폐지국이 1백개국을 넘어선 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희망의 표징입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생명의 신성함을 옹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생명권은 모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그의 생명권은 존중돼야 합니다.
사형이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결정적 증거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형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온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범죄인을 처벌하는 것은 사회의 정당한 권리이자 양도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그러나 이 권리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으로까지 확대해서는 안됩니다.
현대사회는 사형 말고도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도 사형이 아닌 형벌을 적용해야 합니다. 사회의 안전에 대한 염려에 부응해 종신형도 가능한 것입니다. 사형제도의 근원에는 중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죄값으로 사형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피해자의 정의에 대한 권리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형집행은 폭력을 가중시킬 뿐 참된 치유나 결말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범죄인의 회개 가능성을 막고 오판을 바로잡을 가능성을 앗아갑니다.
범죄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절대로 필요한지 진지하게 자신에게 물으면서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원수와 보복의 문화를 사랑과 자비의 문화로 바꾸는데 나서야 할 때입니다. 사형이 아닌 형벌을 적용하는 것은 공동선과 인간의 존엄성에 더욱 부합하며 비폭력 원칙, 생명 보호와 같은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사형제도는 결코 범죄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해결책은 포괄적인 도덕 교육과 전통적 가치의 회복에 있습니다. 형벌은 엄정하고 범죄에 비례하는 것이어야 하지만, 가능한한 범죄자를 사회의 건설적 구성원으로 복귀시키는 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사형제도는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사형제도는 이제 실패한 실험이라는 것이 널리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폐지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살인은 안된다"라고 거듭 호소합니다. 아무리 가증할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에게라도 치유와 용서를 통한 갱생의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는 사랑과 자비가 절실히 요청되는 지금입니다.
2001년 6월 2일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 연합 공동대표(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