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고리체바 여사「풀다」강연초 (상) 소련교회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편집국 기획부
입력일 2020-07-07 10:56:22 수정일 2020-07-07 10:56:22 발행일 1989-05-28 제 165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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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신앙의 궐기가 일어나고 있다
70년대 박해이후 교회 찾는 젊은이증가
로사리오ㆍ성서모임 통해 영적갈증 해소
관광비자로 입국한 미국인 신부 20여개 지하써클 방문하기도
외형적으론 무신론이 승리한 곳…신앙만이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인식 고조
타티아나 고리체바(Tatjana Goritschewa)는 1947년 레닌그라드의 한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26살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알게 되었다. 1980년 소련을 탈출해 온 이래 빠리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후루시쵸프 치하에서「최후의 잔악한 박해물결」인 70년대 이후 소련에서 일고 있는 신앙의 궐기에 대해, 크리스찬들의 대담무쌍한 모험, 석방된 사람들의 가난과 연금생활, 박해와 고난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녀는 신앙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의 정신적 공허감을 느끼면서 전적으로 무신앙적인 환경 속에서 진실을 찾고자 노력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다음은 지난 87년 8월8일 서독 풀다에서 강연한 내용으로서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러분!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왔습니다. 그곳은 겉으로 보기엔 무신론이 승리한 곳입니다.

그곳의 교회는 고통받는 교회이며 십자가를 멘 교회입니다. 교회는 승리의 교회가 아니라 숨어있는 침묵의 교회이며, 기도하고 울며 겸손 하게 하느님 앞에 서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승리하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지옥의 문이 교회를 쳐 이기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이를 몸소 경험한 것입니다. 성모님도 이것을 잘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70년 전 파티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러시아는 도처에 자기의 병을 전파할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내 심장이 승리할 것이다. 러시아는 회개할 것이다」.

나는 7년 전부터 이곳 서방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서 보는 것은 사람들이 이데올로기 막시즘으로 「병」 들어있으며, 여러 가지 인간적인 「어리석음」 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러시아에는 막스주의자들이 서방에서보다 오히려 더 적습니다. 아마도 러시아는 모든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유일한 나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막스-레닌주의에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루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는 지금 신앙의 궐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것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가톨릭교회에만 발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은 그런 소식을 접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실 것입니다. 소련에는 물론 교회신문도 없고 교회 텔레비전도 없습니다. 소련에서는 그런 일을 이야기 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소련에서도 발현했습니다. 러시아의 신앙인들은 그들이 말세에, 묵시록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일 년 전 르보브 근처에서 발현하셨는데 르보브는 우크라이나의 한 도시입니다. 성모님은 말씀하시기를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 할 사랑은 적다』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레닌그라드의 친구들이 내게 편지를 보내주어 나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여자친구인 갈리나는 편지에서 『평신도들인 우리는 아직 사제나 주교들보다 더 자유롭게 살고 있다. 우리는 공적인 교회를 비평하지 않는다. 무능한 교회, 피동적인 우리 교회를 비방하지 않는다. 차라리 우리 평신도들이 이 과업을 넘겨받고 있으며, 우리가 거룩해지고 추수를 거두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썼습니다.

추수할 것이 많다는 것은 땅이 준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소련에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를 알아듣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거짓 속에 살기도 피곤해졌습니다.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가 승리할 것이라 믿습니다. 무신론적인 이데올로기는 그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여기 서방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자유마저 그들은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나 마음을 갖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천가지 가능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러시아사람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 갖고 있지 않습니다. 꿈도 꾸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예컨대 복음성경의 종이 한 장을 발견하면 관심을 갖고 그냥 암기해 버립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품고 있습니다. 또 단 한번 기도를 들은 사람은 역시 암기해 버립니다.

그래서 이미 땅은 준비되어있습니다. 혹시라도 서방에서 들어온 책이나 복음성경(거의모두가 서방에서 들어온다) 을 얻게 되면 이것은 그에게 큰 보물이 됩니다. 우리는 이런 책들이 필요합니다. (역자 주:서방에서 소련어로 번역된 종교 서적을 소련으로 많이 보내고 있음).

러시아의 교회는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마지막 박해의 물결은 후루시쵸프 시대에 시작되었습니다. 후루시쵸프는 『나는 이제 마지막 신부를 텔레비전에서 볼 것이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나는 많은 내 친구들처럼 거의 모든 러시아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처럼 완전한 무신론자였습니다. 또 그때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교회는 몰락하고 실제로 몇 년 후면 존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교회수도 아주 적었습니다(오늘날 대개 7천5백 교회 정도 있다고들 합니다). 당시 신부수도 적어서 6천명을 약간 넘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나이든 부인들이 죽고 나면 아무도 교회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후르시쵸프가 이를 말했을 때 오히려 신앙이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우리 자신들도 믿지 않았던 일입니다.

나는 수백만의 러시아 사람들처럼 완전한 무신론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는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거의 무신론자들인 40명의 다른 사라들과 함께 공동 거주지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 몇몇 나이 든 부인들과 할머니들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든 이들로부터 경멸당했으며 나 또한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내영혼속에서 살아있었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진실을 찾아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진실을 책속에서 찾으려 했고 후르시쵸프 하의 정치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나는 콤소몰즈(Komsonolz) 라고 하는 공산주의청년동맹의 간부가 되어있었습니다. 나중에 나는 결국 정치적사회적 활동 안에서 진실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새로 태어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였습니다. 처음에는 종교가 내게 있어서 철학이었습니다. 철학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였고 실제적인 자양분이 되지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요가(yoga) 를 발견했습니다. 이 요가는 서구에서 보다 러시아에 더 넓게 퍼져있었는데 우리는 영혼과 정신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으며 영적 체험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요가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절대자가 존재하며 아마 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련에서는 요가 외에도 많은 동양적인 종교들이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크리쉬나(Krishna) 운동이 많이 퍼져있었으나, 박해를 받았고, 레닌그라드에는 지하 조직으로 요가 문학이 성행했습니다. 기독교는 소련 요가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요가를 통해서도 신앙을 얻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나는 그리스도교 책들과 기도문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나는 26살이었습니다.

나는 레닌그라드와 모스코바에서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러시아 전체가 이미 회개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70년대가 시작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나처럼 교회에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신자끼리도 서로 접촉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우리 신자들은 서로 만나고, 우리들이 읽은 책들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미소를 보내고, 서로 알아보았습니다. 신을 찾는 사람들은 길에서도 서로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 모두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모스코바에서는 10~20명이, 레닌그라드에서는 2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 우리는 그저 함께 기도하고, 교부들과 그의 여러 가지 신학서적을 읽고, 그리고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지식인들이며 의심하지 않고 교회가 주는 모든 것을 어린 아이처럼 거리낌 없이 신뢰하며 받아들였습니다. 소련에서는 이 모든 것이 지하조직으로 되어있습니다. 어떤 미국신부님은 관광비자로 소련에 와서 두 주간 동안 나도 모르는 이런 그리스도교 서클을 20개도 넘게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또 이런 써클은 아주 빠르게 조직되고 있었으며 성서모임, 대화하는 모임, 로사리오기도모임 등이 있었고, 또 이들은 개방적이어서 정교회(正敎會) 와 가톨릭이 함께 모였습니다(소련에서는 리따우에서처럼 가톨릭 신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또한 침례교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도 같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KGB는 우리를 서로 갈라놓고 한 교회가 다른 교회를 욕하도록 마귀처럼 온갖 짓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정교회 신자들에게는 『침례교는 이단이며 무신론자들 보다 더 나쁘다』 고 하고, 침례교 신자들에게는 정교회를 또 그렇게 비방했습니다. 이것이 효과가 있었으며 마귀가 이긴 것 같았습니다. 한 교파가 다른 교파를 비방하는 일을 가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도 많은 이들이 성경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정교회 신자들 중 약 50%가 복음서를 읽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크리스찬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들은 훌륭한 신자이며 그들이 교회에서 들은 것을 가슴속 깊이 지니고 있는 훌륭한 정교회 신자들입니다. 우리 신자들도 종교적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속한 서클에서는 이미 공부를 많이 하고 있으며 그런 우둔함도 없습니다.

나는 자주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수도원은 30년대에 이미 파괴되거나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수도자들도 살해되거나 체포되었습니다. 오늘날 겨우 20개의 수도원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나는 수도원에서 몇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박해도 수도자들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이런 훌륭한 수도자들은 모두 체포되었고 굴락(수용요)ㆍ감옥 등에 20년~30년씩 죄수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아는 많은 수도자들은 이제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이콘(IKON) 이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매일 그들에게 와서 위로와 고백성사를 받고 있습니다. 몇 개의 마을은 특히 좋은 사제가 있는 곳에는 수도원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근처 숲에서 숙식을 하며 사제들 곁에 있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민병대는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증명서를 빼앗기도 하지만 다시 사람들은 몰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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