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데스크칼럼] 졸업식 / 박영호 편집국장

박영호 편집국장
입력일 2013-06-18 04:02:00 수정일 2013-06-18 04:02:00 발행일 2013-06-23 제 285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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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졸업식 생각이 났다. 학교를 워낙 여러 번(?) 다닌 탓에 졸업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실제로 참석했던 졸업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여러 번 졸업한 탓에 번번이 치렁치렁한 복색을 하기가 민망하기도 했고, 비슷비슷한 사진에 비슷비슷한 등장인물의 사진들도 식상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차가 많이 밀리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단촐하게 사진만 찍고 가자며 행사장 밖에서 폼만 잡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방심하는 사이, 이열로 줄을 지어 행사장으로 진입하는 지도 교수님과 친구들 사이에 갇혀서 경박한 잔머리에 심한 멸시를 담은 눈총을 받기도 했다.

사실 뜬금없이 떠오른 졸업식 생각은 아니다. 첫째 아이가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마냥 어릴 것만 같았던 아이가 생각보다 덩치가 크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고, 이제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다시 되새겨야 했다. 내 아이가 졸업을 했고, 이제는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져도 되는 청년이 됐다는 것을 어쩌면 나와 아내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지만 어른이 될 아이에 대한 노파심과 우려를 불식시켜준 것은, 무엇보다도 감동적이었던 선생님들의 모습이었다.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자기 이름을 듣고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아이들을 한껏 존중하며 손을 잡고, 안아주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통해 나의 아이가 이제 졸업을 할 만큼 몸과 마음이 커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아이는 아주 성적이 좋고, 빼어난 특별 활동을 했고,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상도 푸짐하게 타서 내노라 하는 명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아이가 호명되어 걸어나갈 때 친구들의 환호는 유난히 높았다. 당연하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그것이 감동은 아니었다. 어떤 아이는 아주 소박한 복장 즉, 아무런 상도 타지 못했고, 빼어난 성적을 거두지도 못했고, 그래서 좋은 대학에 합격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이는 당당했고, 발랄했다.

무한경쟁의 나라에서 나고 자란 필자는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머리 없는 아이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그 아이는 스스로 당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아이를 향한 친구들과 가족들의 환호와 격려, 그리고 선생님의 악수와 포옹 역시 진하고 뚜렷했다.

글쎄, 어쩌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강박 관념이 가져온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대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물론 앞으로의 투철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보장돼야 하겠지만, 분명하고 명백하게, 적어도 세속적인 가치로는, 밝고 힘찬 미래를 보장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하겠다.

힘찬 악수를 나눈 선생님들의 마음 속에도 어쩌면 두 아이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암암리에 자리잡고 있었는지 필자는 알 도리가 없다. 친구들의 환호와 지지가 그저 장난기였거나, 공부는 못해도 의리는 있었던 아이에 대한 치기 어린 장난끼였을지도, 가족들의 환호는 어쩌면 아이가 기가 죽지 말라는 가족애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분명히 확신한다. 물론 아이들이 어떻게 학교 생활을 했는지, 얼마나 공부를 했으며, 얼마나 큰 성과를 거뒀는지가 졸업 후 아이들의 장래를 상당 부분 결정지을 것을 알지만, 반드시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내가 내 아이에게 보내는 지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 아이가 거둔 성과가 무엇을 의미하든간에 그것은 단지 미래를 향한 하나의 새로운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좋은 재질로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진 도구가 미래를 편안하고 용이하게 열지언정 내 아이가 스스로 손을 뻗어 열지 않으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확실하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박영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