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2월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한국순교복자시성추진안이 접수되면서 이 땅에 첫 성인 탄생의 움직임이 움트기 시작된 이래 13년만에 103위 한국순교복자 전원이 시성되는 결실을 맺게됐다. 앞으로 세계교회안에서 나란히 공경을 받게될 103위 성인이 탄생되기까지 한국교회 안에서 준비해 온 13년의 역정을 간추려본다.
▲71년 12월 13일=주교회의 추계정기총회에서 한국순교복자 시성추진안 접수, 연구과제로 보류
▲75년 9월 13일=전국평협 제8차 정기총회에서 시성시복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키로 결의
▲75년 10월 28일=전국평협 상임위원회에서 시성시복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자문위원 선정 및 그 위촉을 결의
▲75년 11월 29일=전국평협 시성시복운동추진 제1차 자문위 소집 및 자문위원 추가위촉
▲76년 4월 21일=주교회의 춘계정기총회에서 전국주교들의 연서명으로 한국순교복자 시성청원서 제출 및 시성추진위원장에 김남수 주교 선임
▲77년 10월 13일=「로마」유학중인 박준영 신부(서울대교구)를 「로마」주재 한국순교복자시성수속 담당관으로 임명. 전국평협은 시성시복추진을 위한 기도운동을 독려하면서 기도문을 제작 배포
▲78년 4월 13일=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청원서 교황청에 정식접수 허가
▲80년 1월 14일=한국천주교회 2백주년기념 준비위원회 결성
▲80년 7월 17일=한국순교자 시성시복추진을 2백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입안
▲80년 11월 18일=2백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총무 변기영 신부가 시성시복추진부장 겸임
▲82년 5월 28일=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보고관면청원서를 전국주교단 연서명으로 성청에 제출
▲82년 6월 18일=박준영 신부의 귀국으로 공석중인 「로마」주재 시성시복수속담당관에 유학중인 김진석 신부(전주교구) 임명
▲82년 7월 17일ㆍ9월 9일=시성시복추진의 전국신심화를 위해 전국적으로 위원을 확대 위촉
▲82년 11월 22일=시성시복추진위 제1차 회의(사업계획확정) 개최
▲83년 1월 28일=순교자유해 본당순회기도회 전에 난치병환자 등록요망
▲83년 2월 1일=시성시복후보자 표준영정제작을 위한 기획추진 고증제작 등 담당할 위원위촉
▲83년 2월 7일=전주교구청에서 시성시복추진위 제2차 회의 개최
▲83년 2월 11일=시성시복추진부장 변기영 신부 보름동안 교황청 방문. 시성추진에따른 실무교섭 및 현장점검
▲83년 2월 16일=재의수요일을 기해 전국 각 본당 수도회 단체별로 순교자유해순회기도회 실시. 9월 복자성원까지 계속
▲83년 3월 7일=「로마」주재 시성시복수속 담당관에 김진석 신부 후임으로 윤민구 신부(수원교구)임.
▲83년 3월 15일=시성시복담당 김남수 주교, 시성성성장관 빨라찌니 추기경 예방
▲83년 3월 24일=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추진을 위한 기적심사관면청원서를 전국주교단의 연서명과 주한교황대사 몬떼리시대주교의 의견서를 첨부하여 제출
▲83년 4월 16일=시성시복후보자 영정제작회의 개최
▲83년 4월 18일=대구 가톨릭 여성교육관에서 시성시복추진위 제3차 회의 개최
▲83년 4월 20일=김수환 추기경 시성추진문제로 교황성하 예방하고 시성성성장관 빨라찌니 추기경 면담
▲83년 6월 7일=성지 미리내 소재 대건회관에서 시성시복추진위 제4차 회의 개최
▲83년 6월 9일=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에 필요한 기적심사관면 윤허
▲83년 7월 13일=주교단 한국에서 시성식 거행 및 시성추진 제목을 「복자 김대건 안드레아와 102위 동료한국순교자들」로 변경 요청
▲83년 7월 19일=청주가톨릭회관에서 시성시복추진위 제5차 회의 개최
▲83년 9월 10일=시성대상복자 약사 작성, 시성성성에 발송
▲83년 9월 16일=서울 절두산소재 한국순교자기념관에서 시성시복추진위 제6차 회의 개최
▲83년 9월 27일=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한국순교복자 103위 시성을 최종 승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