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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4. 이병호 주교(4)

정리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22-10-04 수정일 2022-10-04 발행일 2022-10-09 제 3313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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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으로 살며 깊어진 영적 갈증, 신심서적으로 채워

「준주성범」 통해 확고해진 사제의 길
실제 삶과 괴리된 신학교 공부에 실망해
옛 교부들에게서 살아있는 복음 발견한
신학자들의 영적 고뇌에 크게 공감해

이병호 주교 사제서품 소식을 보도한 1969년 12월 21일자 가톨릭시보. 맨 아랫줄 가운데가 이병호 주교.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앞서 말씀드린 대로, 「준주성범」을 읽고는 사제의 길을 분명히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혜화동에 있는 성신고등학교에 입학했지요. 그런데 그 길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나니 엉뚱한 생각이 드는군요. 최근에 저는 「20세기 신학 결산 보고서」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제목의 프랑스어 책을 읽었습니다. 두 권, 총 1585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인데, 20세기에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른 그리스도교 전체에 걸쳐서 신학과 교회생활에 일어난 변화와 동향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가톨릭으로서는 1962~1965년에 있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전환점으로 하는 동향을 소개하지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신학 각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 열두 분을 소개합니다. 이들 중 반은 개신교, 반은 가톨릭을 대표하는 분들입니다. 가톨릭측 신학자로서는 폰 발타사르, 마리 도미니크 셔뉘, 이브 콩가르, 앙리 드 뤼박, 칼 라너, 에드워드 스킬레벡스 등 공의회 전후시기에 기라성 같이 떠올랐던 분들이지요.

그런데 이분들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이분들이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며 그것이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실제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크게 실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까스로 거기에서 벗어난 것은 거의 하나같이 옛날 교부들에게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복음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경우도 비슷했습니다. 데레사 자서전이나 「준주성범」을 읽으면서 온 존재 깊이 뚫고 오던 충격이나, 생생한 복음적 삶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신학교의 실상을 체험하며 나름대로 실망이 컸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집에 와 있던 어느 날, 어머님께 불쑥 한마디 했습니다. “어머니, 나 신학교 그만둘까?” 물으면서도 예상되는 답변이 이미 머릿속에 있었지요. “일단 들어갔으니, 깊이 생각해 보아라. 그러고서도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아” 등이었죠. 그런데 제 말이 나가자마자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어머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나와라.” 당시에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나온다는 것은 온 동네 사람들 거의 다가 신자인 나바위의 분위기로서는, 지금이라면 사제품을 받고 나서 그만두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님도 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지요. 어머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오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너를 외국에 보내줄게.” 외국은커녕 서울에 보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처지인데도, 어머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때 어머님이 제가 예상했던 반응을 보이셨더라면, 저는 실제로 신학교를 나왔을 것입니다.

이병호 주교 사제서품 당시 증명 사진.

이렇게 한 고비(?)를 넘기고 나서, 저는 요즈음 말로, 영적 무미건조나 갈증을 느낄 때마다 「준주성범」이나 소화 데레사 자서전, 그리고 당시에 나와 있던 몇 가지 신심서적을 읽으면서 목마름을 그럭저럭 달랬습니다. 성경 강의에서조차 큰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지요. 성경 과목에서 시험 성적은 아주 좋은 편이었지만, 당시의 강의 방식에 큰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제대로 발견한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이런 사정은 유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소화 데레사도 먼저 「준주성범」에 매료되어 그것을 거의 외웠지요. 그래서 아직 법적으로 차지 않은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청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로마에 갔을 때, 교황님 앞에서 「준주성범」을 줄줄 외웠다지요. 그러다가 후에 성경을 발견하고부터는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그분이 병상에 누워있던 어느 주일, 문병을 온 원장수녀님께 “오늘 미사에 나온 복음이 무엇이었어요?”하고 물었을 때, “뭐였더라? 아! 그거. 작은 아들이 재산을 몽땅 가지고 도망갔다는….” 그 말을 듣고, 데레사는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께…” 하면서 루카복음의 그 대목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다 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련장으로서 젊은 수련자들에게 수업을 할 때마다 성경의 말씀이 계속 튀어나왔다지요. 이런 이야기를 생각하면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가 바오로 사도를 두고 하신 말씀이 연상되지요. “그분은 입만 열면 그리스도가 튀어나온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나 입만 열면 그리스도가 튀어나와야만 그 이름에 걸맞은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다”(갈라 3,27 공동번역)는 말은 그런 의미이겠지요. 바오로 사도는 참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상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19-20 공동번역)

정리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