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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특집] 사순, ‘40일’의 의미는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22-02-28 수정일 2022-03-02 발행일 2022-03-06 제 3284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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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 모두 떨치고 진정한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여정
주님 부활 대축일 준비하던
초기교회 단식 관행에서 유래
40은 성경의 주요 상징 숫자
예수님 수난과 고통 묵상하며
자신을 정화·참회하는 기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 시기다. 사순(四旬)은 한자 넉 사(四)와 열흘 순(旬)을 사용해 숫자 40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에게 ‘40’이라는 숫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순 시기를 맞아 ‘40일’의 의미와 신자들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소개한다.

■ 사순 시기, 정확히는 38일

사순 시기는 정확히 말하면 40일은 아니다. 38일이다.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의 만찬 저녁 미사 전까지다. 이때 한 주 중 주님 부활을 기념해 단식하지 않는 주일은 제외한다. 예전에는 성목요일 주님 만찬부터 성 토요일까지의 ‘성삼일’을 포함해 40일을 사순 시기로 지냈다.

하지만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이 성주간 전례를 개정하면서 성삼일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이를 사순 시기에서 제외했다. 따라서 올해 사순 시기는 3월 2일 재의 수요일부터 4월 14일 성목요일 주님의 만찬 저녁 미사 전까지 44일 동안 이어진다. 이중 6번의 주일을 빼면 38일이다. 사순 시기에 이어지는 성삼일 동안 최후의 만찬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에 이르는 인류 구원의 신비를 기념한다. 이를 ‘파스카 성삼일’이라고도 하며, 전례력에서 다른 모든 축일에 우선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 사순 시기 형성 과정

인류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기 위해 초기 교회는 축제를 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했다. 주님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서서히 생성·발전됐으리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초기 교회는 주님 부활 대축일 전 금요일과 토요일 엄격한 단식을 통해 이를 준비했다. 하지만 동방 일부 지역에서는 덜 엄격하긴 하지만 며칠 동안 단식을 하며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관행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도 주님 부활 대축일 전 40일 동안 준비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3세기 말과 4세기 초 이집트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고 40일 동안 단식하고 유혹받았던 것을 되새기며 40일 동안 단식했는데, 이후 참회와 단식으로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것으로 뜻이 바뀌었다.

로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수난기를 읽는 것으로 시작해 한 주간 단식하며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했다. 354년부터 384년 사이에는 주님 부활 대축일 6주 전 시작하는 40일간의 준비 기간이 마련됐다. 당시 로마 교회에서 부활의 날인 주일에는 단식을 하지 않았기에 6주에서 단식하는 날은 36일밖에 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6세기 초에 이르러 사람들은 온전히 40일 동안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길 원했고, 사순 첫 주 이전의 수요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8세기 말 「로마 예식」 22권에서는 교황이 사순 시기 첫 미사를 드리기 위해 아벤티노 언덕에 있는 성녀 사비나 성당으로 행진하면서 “옷을 바꾸어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파묻혀 단식하며”라는 후렴을 노래했다는 사실을 전해 준다.

이러한 영적 의미를 10세기 라인강 지방에서는 감각적 표현 방식을 덧붙이고자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추가했다. 이렇게 단식하는 40일을 채우고자 하는 열망에서 ‘재의 수요일’이 자리 잡게 됐다.

이반 크람스코이 ‘광야의 그리스도’ (Christ in the Wilderness).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 성경 속 40, 주님 만나기 위해 준비·정화하는 기간

이처럼 중요한 숫자인 ‘40’은 성경에서 나왔다. 성경에서 40은 여러 차례 언급되는데, 이는 중요한 사건을 앞두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정화한다는 의미의 상징적인 숫자다.

실제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고 계약을 세우시기 전 40일간 밤낮으로 비를 내려 의롭지 않은 죄인들을 벌하셨다.(창세 7장)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 땅 경계에 다다를 때까지 광야에서 40년이 걸렸고(탈출 16,35), 모세는 하느님의 율법과 계명이 기록된 판을 받기 위해 시나이 산에 올라가 그곳에서 40일을 지냈다.(탈출 24,12-18) 엘리야도 하느님 계시를 받기 위해 천사가 준 음식으로 40일을 걸어 호렙 산에 이르렀고(1열왕 19,8), 에제키엘은 하느님 말씀을 따라 유다 집안의 죄를 짊어져 40일 동안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웠다.(에제 4,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며 악마에게 유혹받으셨고(루카 4,2),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하셨다.(사도 1,2-3)

■ 부활 기다리며 수난과 고통 묵상하는 시기, 준비 필요

사순 시기는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며, 하느님을 만나기에 합당한 준비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이러한 의미는 특별히 재의 수요일 말씀의 전례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데, 이날 전례는 참회 호소(요엘 2,12-18)와 하느님과의 화해 권고(2코린 5,20-6,2), 자선과 기도, 단식을 하라는 그리스도 가르침(마태 6,1-6. 16-18)으로 구성된다.

강론이 끝난 다음에는 재를 강복하고 머리에 얹는 예식이 거행되는데 이때 사제는 재를 얹어 주며 두 가지 양식으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창세 3,19 참고)이고, 다른 하나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이다. 이는 결국 먼지로 돌아갈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호소다. 고대로부터 재는 통회와 참회, 덧없음을 상징했다.

■ 세속은 뒤로하고 주님께 눈과 마음 돌려야

자신을 정화하고 참회, 속죄, 회개하며 주님 부활을 잘 기다리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믿으며 세속을 뒤로하고 눈과 마음을 모두 그분께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23항에서 밝힌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고, 그분의 자비를 믿고, 피를 묵상하며 이로써 깨끗해질 때 우리는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바오로 사도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로마 8,17)고 당부했다.

성경 속 40의 의미에 대해 가톨릭대 전례학 교수 윤종식(티모테오) 신부는 “40이라는 숫자는 하나의 전환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출애굽에서는 한 세대가 넘어가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한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밝힌 윤 신부는 “그동안 세속에 젖어 살았다면 하느님의 사람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고, 그런 시기였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윤 신부는 “매일의 바쁜 삶으로 잊고 지냈던 십자가상 예수님을 바라보며 성령의 인도로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날들이 사순 시기”라며 “매일 기도와 미사, 이웃과 자연에 늘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