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11월에 해야 할 일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신부(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0-11-03 수정일 2020-11-04 발행일 2020-11-08 제 3218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벌써 11월 위령성월을 맞는다. 두 달 밖에 남지 않은 올해... 코로나 사태로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 틈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허공에 날린 듯 지난 10개월을 잃어버린 것 같아 허전하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올해의 시간이 있다는 희망으로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까 궁리해본다.

우선, 위령성월을 맞아 본당 사목회 회장단과 그 외에 몇몇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용인 성직자 묘지를 찾아가 돌아가신 역대 본당 신부님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본당에서는 매년 이맘때면 버스 한 대에 신자들을 꽉 채워 용인 성직자 묘지를 다녀오곤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참석 인원을 축소하기로 했다. 여러 본당을 다니며 사목을 해보았지만 돌아가신 역대 본당신부님들을 잊지 않고 찾아가 미사하고 연도를 바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 본당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타 본당에도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두 번째 할 일은 두 달에 한 권씩 소개하는 본당 추천도서를 선정하는 것이다. 내가 이 본당에 부임해온 이후로 벌써 19권 째다. 이번 11월, 12월 두 달 간 읽을 책으로 어떤 책이 신자들에게 유익할까 고민하다가 위령성월 분위기에 맞을 것이라 생각해 선정한 책은 <내 가슴에 살아있는 선물>(2019)이다. 이 책은 오랜 시간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아온 이영숙 베드로 수녀님의 호스피스 체험을 소개하고 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인생의 마지막 길목에서 못다한 사랑을 회복하여 하느님 생명에 초대될 수 있도록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고 따뜻한 영적 돌봄의 소중한 소명을 다해온 수녀님의 헌신이 빛난다. ‘눈물은 신비’라고 하던가? 인간 속에서 나온 눈물은 영혼 육신과 그 주변 사람들을 모두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삶의 여정을 추스려본다.

세 번째 해야 할 일은 본당에서 매년 위령성월에 실시하는 사별가족 초청 미사다. 지난 일 년 동안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들을 초청해 그 연령들을 위해 미사를 드리고 사별의 슬픔과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이 하느님 은총 안에 굳굳히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하고 치유하는 시간이다. 예전에 노인대학에서 잉꼬부부라고 소문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기억난다. 매일미사만 아니라 노인대학을 할 때면 두 분은 늘 손잡고 함께 다녀서 주위사람들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할아버지 건강이 악화되면서 결국 세상을 떠나셨고 할머니는 혼자 남게 된다. 매일미사를 나오던 할머니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날 오랜만에 미사에 나오신 할머니는 내게 귓속말로 살짝 말하시는 것이다. “내가 우울증에 걸려서…” 그렇게도 활달하셨던 할머니가 이렇게 변하시다니… 어느날 갑자기 외로운 독거노인이 되어버린 그 할머니를 보며 가여운 생각이 들어 나는 노인대학 봉사자들과 다른 할머니들에게 합동작전을 펴서 그 할머니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에 적응하며 다시 활기를 찾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신다. 본당 차원에서 사별가족에 대한 돌봄 프로그램 중 하나로 ‘사별가족을 위한 미사’를 실시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미사 전에 연도를 바치고 미사가 끝나면 사별가족들과 다과를 나누면서 한 가족씩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며 써가지고 온 편지를 낭독할 때에는 모두가 눈물을 흘린다.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상실의 고통과 후회와 풀지 못한 응어리가 서서히 사라지고 사랑과 용서, 새로운 다짐과 희망이 조금씩 돋아나는 은총의 자리가 된다.

이제 11월을 마감하며 꼭 해야 할 일은 ‘사목회 연수’다. 작년 말에 새로 구성된 사목회가 야심차게 수립한 올 한해 사목계획이 코로나19로 인해 거의 중단되고 말았으니 대부분의 사목위원들은 날개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내년도 새로운 본당사목을 위해 서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짜야 한다. 이제는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사목’이라는 전제를 달아야 한다. 각 분과별로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며 혹은 통합적으로 사목이 이루어지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올해의 사목 경험이 내년 사목에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사목회 연수 때 충분히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내년에 더 이상 시행착오가 없거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목이 되지 않게 할 수 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민수 신부(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