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점수에 매달리는 인생 / 서영석

서영석
입력일 2014-12-02 수정일 2014-12-02 발행일 1985-01-20 제 143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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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고사성적이 인간평가 기준인가
하느님께 받은 재능대로 키워야

새해가 밝아왔다. 모든 것이 문득 다시 새로와지고 만상이 새로운 축복 속에 즐겁기만 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축복을 빌고 악수를 나누고 희망이 절로 솟아난다. 이때만은 인간의 비열함이 입밖에 뱉아지지가 않아 더욱 행복스럽다.

◆성모당엔 때아닌 기도행렬이

새해가 밝아왔다. 그러면서 또 그 대학 입학시험이 시작 되었다. 고3병을 함께 앓아 초죽음이 다된 어느 엄마의 절박한 모습을 달포전 대학 예비고사를 치룰 때 어느 신문에서 본 것이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때 성모당에서 기도하는 엄마들이 한 마당을 꽉메울 정도라고도 했다. 어느 축구팀의 골인 때마다 하는 감사기도도 받아주랴, 남미 권투선수의 시합전 성호기도도 들어주랴 하느님 정말 정신없이 바쁘셨겠다 하고 농담을 하면서도 그 처절한 부모들의 심정을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벌써 그 시험이 끝나고 수석 합격자들이 부모들과 함께 청와대에 초청된 화면을 보았다. 당자도 부모들도 얼마나 영광스러웠을까. 내가 감격스럽기 조차 했다.

구약(잠언 17, 6)에 이르기를『어버이는 자식의 영광이요, 자손은 늙은 이의 면류관』이라 했다. 과연 옛말이 틀리지 않는구나. 자식을 위해 의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어버이들, 이젠 그 자식들이 오늘 그 부모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머리에 얹어주는구나. 오랫동안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고 새인 인사때 처럼 환희와 희망의 축하를 보내고 싶다.

◆大人은義를, 小人은 利를밝혀

그런데 이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나도 수석합격의 영광을, 내자식도 그렇게, 하기야 이러한 인간들의 소박한 소망이 죄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의 한결 같은 바람일테니까. 다만 이것만이 삶의 모두인 것처럼 억지를 부릴때 문제는 생기게 마련이다.

수석합격자의 수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자연계 인문계 여자수석 남자수석 그리고 또 지역별 수석합격자를 모두다 합친다해도 그 수는 지극히 한정될수 밖에 없다. 변할수 없는 사실이다. 속칭 일류대학의 정원수도 수석 합격자보다는 많지만 그래도 원하는 사람에 배해 그 수는 엄청나게 모자란다. 요사이는 사회가 급격히 발전해 화려하고 존경받는 직업의 수가 옛날보다는 많이 늘어났다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의 수가 되지는 못한다. 대통령도 하나, 대병원장도 하나 이런식으로. 모든 사람이 다 의사가 되면 병이란게 없어져 버릴까. 모든 사람이 다 판검사가 되면 이 세상에 죄짓는 사람이 몽땅 사라져 버릴까. 李離和著「한국의 파벌(派閥)」에 의하면 이조때, 그래도 명색이 부귀영화를 오늘의 일확천금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벼슬자리의 수는 불과 1천여개뿐이라 했다.

그때 우리나라 인구가 얼마였는지 난 모르지만 그래서 아귀다툼을 했고 파당을 일삼았고 인간의 비열함이 극치를 이루어 버렸다는것이다. 大人은 義를 밝히고 小人은 利가 있는곳에 소인배들이 모여들게 마련이었다.

立身出世! 세상에 났으니 이미 출세는 한거고 기어 다니지는 않으니 입신도 한게 아닌가. 요새 세상에 이젠 앞으로 더 쉬워질게다. 하루 세끼 밥 먹는 일자리 하나 못얻어 걸리겠는가.

이조 5백년이 지난지가 언제인데 그것도 유교를 믿는다면 차라리 변명이나 될테지만 선교 2백주년을 경축했고 교황님이 비행기타고오셔 서울여의도 광장에서 한국말로 하셨는데, 이마엔 성호 긋고 손에는 묵주쥐고 위로는 할배할매가 치명을 했고 그래서 성인품에 오르셨는데, 아래로는 집안에 신부 수녀도 났는데 그래도 내 자식만은 일등을 해야 하고 내 새끼만은 일류대학에 입학을 해야하고 내 자식만은 군대에 안보내야 하고 내 새끼이기에 그놈의 사촌놈보다는 나아야하고, 만약에 이러한 생각들이 주일신자이건 7일 신자이건 간에 내 마음속에 잠재해있다면 앙화로다. 대학예비고사 치는날 하느님은 정말 골치가 빠개지도록 아프실거다. 하느님이야 본시 우리 인간하고 상대해서 큰득 보실 것이 없는 분이니 차라리 그만두고라도 이젠 본당신부님들 미사예물 받았다가 시험결과 보고 되돌려줄 차비를 해야 하겠다.

『2백점도 못받았으니 만원 예물중에서 그 절반은 되돌려 주이소』이 어이 비합리적이겠는가.

◆신약의「달란트의 비유」가 해답

구두시험때 마다 물어보는 말이 있다. 예비고사 성적은? 농학을 택하게된 동기는? 언제부터인가 거의 모든 수험생들이 몇점하는 대답대신 몇개하고 답을 했다. 처음엔 이상한 답이로구나 하고 생각을 하다가 요즘엔 차라리 이답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예컨데 2백 30점짜리입니다 하는것 같기때문이다. 2백 30개 땄습니다 하는 답이 훨씬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나혼자의 해석이다. 그리고 또 사실인즉 사람의 능력을, 재능을 수치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않는다.

우리가 TV에서 소위 어느 유명한 탤런트(Talent)라고 하는 말은 사실인즉 그 어언이 로마 희랍 히브리의 저울 눈금이나 화폐 단위였었고 그래서 타고난 사람의 재주나 재능을 뜻하게 되었으며 오늘은 내가 그 탤런트의 펜이 되어버린것이다. 나의 재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의 답은 성경(마태오25, 14~28)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있다.

◆예비고사에 몇점을 받았든간에

내 친구 한사람은 아들 하나를 일찍 잃었다.

정학한 병명은 모르지만 몸도 지능도 살아남지 못할 병이었다. 그래도 그 친구는 그 자식을 제일 잊지 못해 했다. 가슴 아파했다. 살아 있었다면 올해 예비고사를 칠 나이인데, 그 친구도 성모당에 가서 3백점을 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을까? 아니다 아니다. 첫째로는 그럴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자식이 그저 살아만 주었더라도 그에게는 더없는 영광의 면류관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아내가 병들어 일찍 상처를 한 그 친구는 그때 내게 이런말을 했다. 차라리 병신이 되더라도 살아만 주었으면 하고. 요샌 우스개소리도 많더라만, 부모를 일찍 여의고나면 늘 따뜻한 부모품이 그리워진다.

엄마가 미인이라서? 아버지가 고관 대작 이라서? 아니다 아니다. 결코 그래서가 아니다. 요샌 나까지 포함해서 별난 자식들도 많긴하더라만 그래도 엄마의 품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1백 3위 성인들의 직업분포 통계를 보진 못했다. 교황님이『성인 김대건』하셨다. 「신부님」이라면 그 옛날엔 아마도 그땐 예비고사도 없었으니까 물론 점수분포통계도 있을 수는 없고. 그래서 어버이는 자식의 영원한 영광이요 자손은 어버이의 영원한 면류관이다. 아비의 직업이 무엇이든 자식의 예비고사 성적이 몇점이든간에.

서영석

◇1935년 대구출생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졸업

◇오스트리아 비인농과대학 농학박사

◇서득 막스 프랑크 축산연구소 연구원

◇현 영남대학교 농축산대학 학장

서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