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성지가 있다」
【양지-경기도】 양지(陽地=前 南谷里)본당 주임 정(鄭主成) 신부는 수원교구 순교자현양사업의 중심을 양지본당 「골배마실」로 집중하려 노력하고 있다. 양지본당서 「고안」성지(골배마실을 주린 말)로 부르는 이곳 성지를 정신부는 1961년 1천4평 사들였고 다음해에 6자 높이 대리석 김대건 신부상과 제대 비문을 세우는데 50만원을 소요했다.
양지성당서 도보로 15분을 걷는 거리에 있는 이 골배마을터 제대 전면에는 김대건 신부의 어머니가 초가집 앞에서 절구질을 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정주성 신부가 당지 주둔 미군의 협력을 얻어 찻길을 내고 산언덕을 헐어 정지공사를 한 이곳은 김대건 신부가 6세 되던 때 이곳으로 이사해 와서 중국으로 신학교에 가기까지 살던 곳이다. 순교선열들이 피신해서 살던 이곳은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상해에서 귀국후 사목활동을 하던 거점이었고 첫미사와 마지막 미사를 드렸고 김신부가 세운 첫 본당 터(1846년)라고 정신부는 설명했다. 7월의 김신부 첨례때와 9월의 성월에는 얼마의 순례자가 가까이에서 찾아오는 이곳에 정신부는 기념성당과 순례자 숙소 건립을 꿈꾸고 있다. 우선 17만원을 들여 기념성당의 종탑을 금년 안으로 끝낼 계획을 세웠다. 서울의 삼화화학(三和化學)공업주식회사 사장 시몬 김(金福圭)씨가 5만원, 서울 명수대부임 조신부가 5천원을 이 사업에 기증했다. 한달에 평균 5·6명이 찾아오는 순례자 수가 증가하고 그들을 위한 숙소를 종탑보다 먼저 세울지를 윤주교님의 재가를 얻어 결정하겠다는 정신부는 『우리 모두의 소원은 전국의 많은 신자들이 이곳을 찾고 순교서열의 유덕을 찬양하고 공경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외국성지와 같은 훌륭한 「우리의 성지」가 하루속히 이곳에 이룩되는 길은 전국신자가 도우고 참례하는 길 뿐이다.』고 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사진에서 보는 초가움막을 작년에 세운 이북 함경도 출신이며 대구에 거주하던 주 막달레나 씨가 기거하고 있다. 1일 순례자의 뒷바라지를 하며 순교선열을 공경하는 주씨는 율무열매로 묵주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여 순교복자의 시성,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이 달성되길 기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대구의 한 여교우가(베로니까 여사) 이곳에 수도원을 세울 수 있는지를 정신부와 의논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