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부살롱] 15. 첫 나들이 / 루치아

루치아·주부ㆍ부산시 중구 영주아파트 9부록 가동 304호
입력일 2020-06-22 16:30:21 수정일 2020-06-22 16:30:21 발행일 1974-09-01 제 92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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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수의 깜박 졸음으로 인해 나는 자그만치 3백15일을 병원에서 살아야 했다. 그것도 의사 선생의 할 일이 끝나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보고 싶어 억지로 집에 왔던 것이다. 몇 달을 집안에서만 뱅뱅거리다 드디어 일대 결심을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한길 가에 나가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가슴 두근거림과 함께 머릿속이 터질 듯 지난 일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생생히 떠올랐다.

고속도로 생긴 게 원망스러웠고 자동차를 안 타겠다고 단단히 다짐했었지만 대구 대학병원에서 6개월을 치료하고 메리놀병원으로 옮길 때 어쩔 수 없이 차를 타야 했다. 앰브란스에 반드시 누워 대구에서 부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이 차 운전수가 안전히 도착하게해 줄까? 내가 탄 차는 안전하다 해도 뒤에 오는 차가 들이받지나 않을까? 저쪽에서 오는 차와 충돌하지나 않을까 걱정걱정하며 창 밖을 내다보니. 와! 차가 이렇게 다니는데도 사람들은 겁없이 다니는데 놀랐다. 꼭 개미 때들 같았다. 언제 사람 발 밑에 밟혀 죽을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움직이는 개미-. 나는 이렇게 되었는데도 저들은 변함없이 왔다갔다 하는 게 의아했다. 문득『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 실소했던 일까지도 생각이 났다.

시내를 나가 차에서 내리니 꼬마들이 구경났다 싶어서인지 뺑 둘러섰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의젓이 서서 애들을 향해 상긋 웃어줬다. 정말 난 조금의 구김도 없이 밝게 웃을 수 있었다. 아무런 부자유 없이 두 발로 당당히 걷는 내 또래들을 볼 때도 평온한 마음으로 지나칠 수 있었다.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럼 없는 인간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팡이까지 동원시켜야 하는 거창한 내 행차이지만 사람이 보고 싶을 때나 자연 속에 들어가고 싶을 때 난 주저 없이 나들이 갈 차비를 할 것이다.

이 란은 주부들을 위한 란입니다. 자녀 교육이나 가정 생활에 관해 유익한 내용이면 어떤 소재라도 좋습니다. 주부 여러분의 많은 투고를 바랍니다. 매수는 2백 자 원고지 5매 채택된 분에게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불합니다.〈편집자 註〉

루치아·주부ㆍ부산시 중구 영주아파트 9부록 가동 3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