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I 부활의 신비
생명의 계절과 함께 우리는 다시 부활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그의 빛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히 내리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수난하시고 죽으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세상의 구원과 영생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느님은 악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고 오히려 그가 악한 길에서 회개하여 당신이 사시듯이 살기를 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에제키엘 18ㆍ23)
이것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성자이시고 당신 스스로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의 생명과 빛, 세상을 구하는 메시아를 보내신 그리스도께서 죽음 속에 영영 썩고 맡도록 버려두기를 원치 않으심은 당연한 사리입니다.
과연 하느님은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죽음으로부터 살리시고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풀어주셨습니다』(사도 2ㆍ24)『예수께서는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계실분이 아니었습니다』(통상 25) 이 같은 부활 사실은 성령강림 날부터 시작하여 순교에 이르기까지 복음 선교에 나선 사도들의 한결같은 증언이요 또한 바로 그 복음 선교의 중심입니다. 사도들이 순교하기까지 주님의 부활사건을 굳세게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바로 부활하신 그 주님을 목격하였고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사도 바오로에 의하면『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에페서 1ㆍ4-5)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의 확증이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은 미래에 있을 우리 부활의 전표(前表)입니다. 이 믿음 역시 사도들이 줄기차게 증언한 바요, 예수님 친히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1ㆍ25). 성경 전체가 이것을 증언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때문에 성경을 기쁜 소식(福音)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믿음, 이에 수반되는 모든 이의 부활의 믿음은 실로 사도들과 교회의 믿음과 가르침의 중심입니다. 이런 확신에서 사도 바오로는 부활을 믿는 이가 곧 그리스도 교인이라고 보았고, 부활이 없다면 믿음도 가르침도 헛될 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허무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1꼬 15ㆍ12-34 참조) (중략)
II 수난과 부활
이 사실 안에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새겨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을 때에는 영웅의 죽음과 같이 장렬하게 태양이 지듯 아름답고 웅장하게 죽은 것이 아닙니다. 시기ㆍ질투ㆍ미움ㆍ배신ㆍ음모와 함께 거의 모든 이의 버림과 조롱 속에 참혹히 죽었습니다. 시몬느 베이유의 말대로『그리스도는 순교자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일반적인 법률상의 죄인으로서 도적에 섞여서 다만 좀 더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죽었습니다』(운명의 시련 속에서 P 85)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갈라 3ㆍ13) 죽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정녕 기적을 구한 유대인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모욕이요 지혜를 찾는 희랍인과 믿지 않는 모든 이에게는 어리석음밖에 아닙니다. (I꼬 1ㆍ23)
십자가는 사실 그 자체로서는 치욕과 비참 죽음과 절망입니다. 여기서 생명과 구원이 온다고 인간의 지혜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때문에 십자가 밑에서 유대인 지도자들은 물론이요 함께 못 박힌 죄수 중의 하나도『이 사람이 그리스도라면 남을 살렸으니 어디 자기 자신도 살려 보라지』하고 조롱했습니다. (루까 23ㆍ35와 39 참조)
그러나 인류의 구원은 사실 바로 여기서 이룩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부활 사건 자체는 삼일 후에 무덤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영광은 이미「갈바리아」에서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의 능력 금력과 권력에서 행복과 안정과 영광과 구원을 찾습니다. 여기에 바로 인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현대 세계의 문제는 물질의 힘에 인간이 자신의 발전과 번영, 평화와 구원의 문제를 송두리째 내맡긴 데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와 삶의 의미까지도 물질적 가치에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힘이나 물리적 힘을 숭배하는 가운데 결국 인간은 스스로의 비인간화와 멸망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중략)
Ⅲ 부활의 증거
이제 여기서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할 또 하나의 진리가 있습니다. 이는 곧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동참 없이 우리는 단번에 부활에 동참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묵은 인간이 죽고 썩은 곳에서 새 인간은 탄생합니다. 이 진리는 우리 각자를 위해서는 물론이요 교회를 위해서도 언제나 같습니다.
십자가 없는 곳에 부활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난의 아픔과 상처 없이 부활을 증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오늘날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이 꺼져가는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불빛을 밝혀야 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현실 사회 속에 삶의 참된 의미와 희망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이는 바로 비인간화로 죽어가는 인간을 다시금 인간답게 부활시키는 과업, 인간 회복의 과업입니다. 십자가 없이 우리는 이 인간 회복과 부활의 과업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치는 그 사랑 없이 우리는 새로운 삶의 길을 이 세상에서 개척할 수 없습니다. 부활 전야에 밝히는 촛불처럼 자신을 불태우지 않고서 우리는 오늘의 어두움을 밝힐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이웃 그 중에서도 불우한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 시련과 박해를 무릅쓰고 진리와 정의를 위해 투신하는 사람들, 그리스도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할 수 없습니다.『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갈라 2ㆍ19) 이렇게 우리도 사도 바오로와 같이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시대와 이 사회 속에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금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은총과 그분의 끝없는 평화를 기원합니다.
1977년 부활대축일 추기경 김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