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백민관 신부가 엮는 신약성서 해설] 228 탕자의 비유 V

백민관 신부ㆍ가톨릭대 교수
입력일 2018-07-13 19:15:44 수정일 2018-07-13 19:15:44 발행일 1993-05-02 제 1853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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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기쁨은 아버지의 기쁨

탕자의 모든 자격을 복권시키는 사랑표현
(루카 15,11-32)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가 멀리까지 마중 나와 목을 껴안고 키스까지 해주는데 몸 둘 바를 몰랐을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죄하는 일뿐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그것으로 흡족했다. 탕자는 돌아오기 전에 불확실한 심정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사죄의 말이 있었다. 이제는 사죄에 대하여 자신감을 얻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조차도 없는 놈입니다”이 한마디로 아버지의 그동안의 노여움과 마음 아픔은 일시에 가셨다.

그리고 막연하게 기대했던 아들의 귀환은 현실로 변했고 막연한 기대는 금방 터질 듯한 기쁨으로 변했다. 이는 아버지의 서두르는 다음 조치에는 드러난다. “빨리 빨리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내 아들에게 입혀 주고 가락지도 끼워 주고 신발을 신겨주어라.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먹고 즐기자” 다시 돌아온 아들을 받아들이는 예절을 묘사한 것인데 이러한 일련의 지시들이 만난 현장에서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고 “종들을 불러라”는 표현으로 보아 집에 들어서면서 지시를 내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종들은 농장 일을 맡아 하는 하인과 집안일을 돌보는 사람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새 옷을 입히고 반지와 신발을 가져오는 일은 집안의 종들이 하는 일이고 소를 끌어다가 잡는 일은 농장 일꾼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니 그 아버지는 대농장의 주인임을 알 수 있다.

소를 잡고 잔치를 하려면 꽤 많은 손님들을 초대해야 할 것이고 따라서 새 옷 입힘과 반지 끼워줌, 신발 신겨 주는 일은 당장 할 수 있었겠지만 잔치를 베푸는 일은 몇 날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옷 입힘에서 잔치를 하는 일련의 행동은 잔치예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모든 행동은 돌아와서 얼마 후에 있은 일일 것이다. 돌아오자마자 당장 하라는 지시처럼 들리는 것은 돌아온 아버지의 기쁨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는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요셉이 이국땅 이집트에 갔을 때 파라오왕이 재상으로 임명하며 값비싼 세마포옷과 반지, 금목걸이를 받은 환대를 연상케 한다(창세 41,42). 제일 좋은 옷은 근동 지역에서 큰 명예를 의미한다. 훈장이란 것을 몰랐으므로 왕이 공로 많은 신하를 포상하려면 귀중한 옷을 입혔다.

여기서 새 옷을 입힌 것은 구원받았다는 상징이다. 반지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고 인장을 표시하며 반지의 양도는 전권이양을 뜻한다. 신발은 호사스러운 자유인을 표시한다. 종들은 집 안팎에서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닌다. 손님도 집에 오면 신발을 벗는다. 따라서 신을 신었다는 것은 그 집 아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드러내준다.

살찐 송아지를 잡는 잔치는 특별한 잔치이다. 보통 잔치에는 염소나 양 정도를 잡는다. 살찐 송아지를 잡는 잔치는 집안의 큰일을 축하하는 축연이나, 비유의 경우처럼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맞는 경축연이다. 나그네 천사 셋이 아브라함을 찾았을 때 아브라함은 살찐 송아지를 잡아 대접하였다(창세기 18,6). 그들은 대 농장의 경우 이러한 잔치에 대비하여 송아지를 살찌워 길렀다.

이상 세 가지 지시사항들은 용서와 아들의 지위복권을 공적으로 분명히 밝히는 일종의 절차이다.

지금까지 전개된 이야기는 ‘되찾은 은전’의 비유에서 맺은 말처럼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라는 구원하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하느님은 아버지처럼 되돌아 온 아들을 기쁨으로 반긴다. 아버지의 기쁨은 구원의 기쁨이며, 자비의 복음은 기쁨의 복음이다. ‘죽음의 그늘과 어두움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려 오신’(루카 1,79) 예수는 죽음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 내주신다.

이것으로 비유 이야기의 전반부가 끝나고 모든 사람의 기쁨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항의하는 큰아들 이야기가 후반부터 이어진다.

백민관 신부ㆍ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