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종교지도자 심포지엄 김추기경 강연원고(全文)

입력일 2017-08-07 16:21:33 수정일 2017-08-07 16:21:33 발행일 1992-11-01 제 182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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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이 사회의 기본가치관 돼야”
도덕적 힘을 지닌 정치인 필요
화해ㆍ일치로 한국병 치유해야
가치관과 문화의 혼돈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도덕적 기반이 상실돼가고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종교지도자 심포지엄이 10월 27일 오후 2시 신라호텔 다이내스티홀에서 개최됐다.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사장ㆍ강경식) 주최로 개최된 이날 심포지엄은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 불교 전관응 스님, 개신교 정진경 목사, 유교 이병주 원로 등이 각 교계대표로 참석.「새로운 한국적 도덕과 가치체계를 찾아서」라는 주제하에 주제발표와 대담, 종합토론 등 순서로 이어졌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은 사회 각계 지도자 및 국민들에게 2천년대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보다 성숙한 국민의식을 육성하고 국가장래의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해 보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천주교 대표로 참가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2천년대를 바라보며」라는 주제발표를 통해『지금 우리는 우리자신과 사회가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아래 중대고비를 맞았다』고 지적하고『한달반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어느 정당이 어느 후보가 승리하는데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승리하는 길을 선택하자』고 강조했다. 김추기경은 이어 『정치인의 정직성과 계층간의 갈등, 지역 패권주의, 가치관의 전도문제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병』이라고 지적하고『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들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에서 먼저 인간중심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정직과 성실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천주교측에서 이관진 평협회장, 오용길 평협부회장 등 회장단이 참석했으며 각 교계 지도자와 사회 저명인사 등 3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됐다. 다음은 김수환 추기경의「2천대를 바라보며」라는 주제강연 전문이다.

2000년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과 우리사회가 이대로는 안된다. 무언가 달라져야한다는 인식아래 중대한 고비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달반후에 치루게 될 대통령선거는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대선을 앞두고 지금 각 정당과 대통령후보 자신들은 필승을 다짐하면서 모든 두뇌와 조직과 능력을 동원하여 전력투구할 것입니다. 그와 함께 이제 선거 열기는 날로 더욱 뜨거워질 것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관심도 점차 그 대선에로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뜻있는 국민들의 관심은 대통령후보 자신들이나 각 정당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국민을 위해서는 누가 당선되고 어느 정당이 이기느냐는 2차적인 문제입니다.

이 선거에서 이겨야 할 것은 특정인이나 어느 정당이 아니라 국민이요 나라입니다.

이번 선거로서 출범하는 새정권은 지난 세월 오랫동안 우리사회를 지배해 왔던 군사독재나 그 잔재까지도 완전히 청산하고 그것과 연관된 반민주적, 반인간적 모든 사슬을 끊고 문민정치로써 민주주의를 참으로 실현시켜야 합니다.

명실공히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민주정부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지금까지의 고질인 지역 패권주의를 타파하고 오히려 지역간, 계층간의 모든 갈등과 분열의 골을 메움으로써 모두를 화해와 일치로 모으며 마침내 남북 분단의 벽을 넘어 한민족 전체의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정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런 여망을 안고 있는 새정부를 탄생시키는 이번 대선은 참으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선은 절대적으로 공명정대해야 합니다. 관권이나 금권개입 등 어떤 부정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대선이 공명정대하기 위해서는 새로 출범한 중립 내각은 물론이요, 정치인, 공무원, 국민 모두가 이 대선이 지닌 막중한 의미를 깊이 인식하고 대처해야할 것입니다. 특히 대통령 후보들과 각 정당 및 선거운동원들은 선거법 준수에 있어 정직하고 성실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지금의 상황은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정치는 계속 표류하고 경제불황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법은 서지 않고 질서는 지켜지지 않으며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물질적 가치가 앞선 가치관 전도 속에서 날로 늘어나는 것은 불법, 무질서, 부정부패, 인명경시 성폭행, 마약과 폭력행위 등 온갖 범죄와 사회악입니다. 우리는 이른바 한국병을 너무 많이 너무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의 해결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를 만큼 우리사회의 혼미는 마구 헝크러진 실타래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기필코 풀어야 합니다. 윤리와 도덕은 살아나야 하고 법과 질서는 지켜져야 합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라입니다. 개인의 영달이나 혈연과 지연, 어느 문중 또는 어느 파벌 혹은 어느 기업이 아닙니다. 한국과 한국인 하면 세계 속에서 나라로서도 자랑스럽고, 사람으로서도 자랑스러워야 합니다. 우리는 21세기를 바라보면서 새롭게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당당히 세계 모든 나라와 겨루어서 7위를 하였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 태극기가 하늘높이 오르며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마다 우리는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을 때 그것은 진정 우리 민족의 우승이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나라 안에서는 정치는 실종된 상황이었고 경제 역시 날도 나빠졌습니다. 국민은 희망을 잃고 실망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젊은 선수들이 국민으로 하여금 잃었던 긍지와 희망을 다시 찾게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어느 여론조사에서는 비록 우리가 큰 난국에 처해 있더라도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를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답이 90%이상 나왔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그런 성과를 얻기 위하여는 지옥 훈련이라는 고된 훈련으로 자기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하여야 하였고 그리고 자신의 명예보다 민족의 영광을 앞세웠습니다.

우리는 이제 정치에 있어서도, 경제에 있어서도 금메달을 따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하여는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각오를 하고 결심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이 배금주의에 젖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한 일들이 다반사가 되고, 권력을 이용한 거액사기 사건들이 거듭되는 황금만능의 가치관을 타파하고, 정직하고 성실하며 참으로 인간이 존중되는 인간 중심의 가치관으로에의 인식전환과 의식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나치리만큼 자기성취와 인생의 행복을 돈이나 권력에 두고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일류대학과 인류직장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것이 마치 인생의 목표인양 사회 관념이 형성되어서 가정교육, 학교 교육의 모든 것이 우리의 2세들을 전인적 인간교육 없이 입시위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모두 일류병에 걸리게 되었고, 우리의 젊은이들은 지금 심각하리만큼 이른바 고3병을 앓고 있습니다.

인간은 과연 그런 물질적 가치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그것이 과연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더라도 사람됨에 있어서 부족할 때에 그 사람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정직하고 성실하지 못한다든지 부도덕할 때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분명히 정직하고 성실하며, 도덕적일 때 참으로 인간입니다. 따라서 인생의 목표도 도덕적 인간이 되는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웃을 위하고 사랑하며 사회발전과 민족의 번영,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헌신한다면 그 사람은 참된 의미로 인간입니다. 동시에 그런 이는 가장 모범적이고 가장 자랑스러운 한국인일 것입니다. 이 준 열사는『위대한 나라란 위대한 인물을 많이 낳는 나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도산 선생은『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고 외치셨습니다. 또 인촌 선생은 공선사후의 정신을 몸소 사심으로써 불멸의 표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선열들의 이런 정신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이런 정신이 가정교육, 학교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이 정신이 우리사회의 기본 가치관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는 이 목표를 향하여 방향전환을 할 수 있습니까? 새 정치, 새 질서, 새 생활의 현수막을 내걸므로써 족하지 않음은 말할것도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 모두가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정치지도자들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이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을 비롯한 우리사회의 지도층이 사회나 특히 젊은 세대에 비추어지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정직하고 성실합니까? 도덕적입니까? 아니면 반대로 성실하지도 정직하지 못할 뿐아니라 부도덕합니까? 각기 우리자신은 그렇지 않다 생각 하겠으나 전반적인 인생은 후자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뿐더러 우리기성세대, 특히 정치인 경제인은 너무나 자주 이권을 두고 서로 다투는 추악한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의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경제가 활력을 찾지 못하는 근본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우리나라를 참으로 새롭게 세계속에 빛나는 한국으로 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지 돈이나 첨단 기술만이 아닙니다. 정직과 성실입니다. 이 정직과 성실이 우리사회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의 바탕이 되어 있다면 비록 우리가 지금 일본이나 기타 선진국에 비겨 돈이나 기술에 있어서 많이 떨어진다 하여도 아무런 염려도 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직과 성실로써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따라잡을 수 있다는 그 믿음이 굳게 설 것이고 국민 모두가 빛나는 대한민국을 세우자는 희망과 의욕을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정직과 성실을 바탕으로 한 깨끗한 사회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는 깨끗한 정치가 있고, 깨끗한 경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정직하고 성실하며 국민을 참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도덕적 힘을 지닌 정치인입니다. 그런 정치인이 있는 곳에는 국민의 신뢰가 있게 되고, 국민의 지지 위에 권위가 자연히 형성됩니다. 동시에 국민적 화합이 확실히 점진적으로 이룩되어 가면서 경제도 힘차게 발전할 것이고 마침내 우리 모두의 염원인 통일도 달성되어서 만방에 빛나는 대한민국이 이룩할 것입니다.

저는『하느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부르는 애국가의 말을 그대로 우리나라는 우리 자신만 잘하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