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순교자의 후예 최현식씨

입력일 2011-05-31 15:34:08 수정일 2011-05-31 15:34:08 발행일 1983-01-01 제 138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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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신앙의 숨결 그대로 이어와 
교회사료에 가문의 신앙행적 잘 나타나
최기식 신부 등 성직자ㆍ수도자 다수 배출
1년에 두차례 집안끼리 모여 신앙나누며 신심다져
복자 최경환 5대손…”선조들의 신앙 잊은적 없어
『아저씨, 우리 어머니가 아프지 않게 단칼에 하늘나라로 가도록 해주세요』81년 천주교 조선교구설정 1백50주년 기념 극영화「초대받은 사람들」을 본 사람들이면 올망졸망한 꼬마들이 휘광이에게 울며 애원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복자 최경환(프란치스꼬)의 어린 아들들이 아버지를 잃고 다시 어머니 이성례를 잃는 순간, 아프지 않게 단칼에 베어 순교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휘광이에게 애소하는 이 장면은 영화의 극치를 이루면서 장내를 눈물바다로 만들곤 했다.

崔賢植씨(55세ㆍ서울성북구 안암동 5가 152~111). 그는 최경환의 셋째아들 우정(바실리오)의 증손자로 최씨 가문의 고결한 순교정신을 묵묵하게, 조용히 이어온 신앙의 후손이다. 『선조들의 신앙을 이야기 할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낍니다』『생활에 쫓기고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른 신앙인으로 살아간다』고 자신을 낮추는 최현식씨는 그러나『결코 복자 할아버지를 비롯, 집안 어른들의 무섭기조차했던 불같은 신앙을 한시도 잊은 적은 없었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경제적인 여유가 흘러넘치는 환경은 아닌듯 하지만 복자의 후손, 신앙인의 후손다운 자세를 잃지않겠다고 다짐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신앙때문에 가문이 박살나는 풍파를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이들의 모습에서, 가슴깊이 간직되어전해 내려온 뜨거운 숨결을 그대로 느낄수 있어 가슴 든든함을 느끼게 한다.

휘광이에게 뇌물(?)을 주면서 어머니의 순교를 돕고자했던 어린 꼬마들의 눈물겨운 청탁이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였던지 어머니 이성례는 남편 최경환의 뒤를 이어 순교의 영광을 안았다. 부모들의 굳센 신앙을 눈으로 보고 삶으로 체험했던 어린 꼬마 4형제는 이어지는 환난을 헤쳐가며 신앙의 뿌리를 이땅 깊숙이 심어가는 밑거름으로 살아 오늘에 이르렀다.

최경환 일가의 신앙행적은 81년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순교자와 증거자들」에 실려있는「최신부 이려서」「최 바실리오 이력서」「송아가다 이력서」등 세편의 이력서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 세편의 이력서 가운데「최신부 이력서」와「최바실리오 이력서」는 최현식씨의 할아버지이며 12년간 이땅 전역을 순례하며 포교활동으로 복음의 씨를 키워나갔던 최양업신부의 조카인 최상종씨가 기록한 것으로 한국천주교회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자료속에는 김대건신부에 이어 두번째 사제로 불림받은 최양업신부이 행적과 뜻하지않은 선종내용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을뿐만아니라 핍박과 시련속에 어둡기만 했던 당시 한국교회 상황을 최씨 가문의 울타리를 벗어난 시야에서 적나라하게 남기고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특히「송아가다 이력서」의 주인공인 송아가다는 최양업신부의 넷째 동생 신정의 부인으로 모진풍상을 딛고 일어나 92세까지 장수, 여러가지 생생한 증언으로 사장될 위기에 있던 각종 사료를 발굴하는데 기여했으며 시아버지 최경환복자의 묘소를 안양수리산에서 찾아내도록 결정적인 증언을 하기도 했다.

신유박해로 거슬러올라가 한국천주교회 초기때부터 믿음때문에 군난을 당했고 이를 피해 유랑의 삶을 살아야했던 최현식씨의 집안은 최현식씨의 할아버지 되는 상종(빈첸시오)씨때부터 풍수원으로 옮겨 정착을 하게 된다.

본대로, 들은대로 신앙을 키워가며 살아온 집안답게 이 집안에는 직손으로 최기식신부와 수녀 1명, 외손으로 4명의 사제와 3명의 수녀를 각각 배출, 풍요한 성소의 온상임을 자랑하고 있다.

순교의 피속에 움튼 신앙의 씨앗이 이 집안에서 알찬 결실을 맺고 있음을 쉽게 느껴볼수가 있다.

『1년에 두차례는 전국에 흩어져 사는 집안들이 함께 모입니다. 8월에는 집안의 묘소가 있는 풍수원에서, 9월에는 복자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수리산에 모여 참배하면서 그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놀라운 신앙을 함께 나누고 신앙을 더 깊이 심도록 기도를 하지요』

슬하에 4남2녀를 두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최현식씨는『별나지 않게 믿는것이 좋은것 같다』면서『요즘은 모두가 지나치게 드러나는것을 좋아하는것 같다』고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부인 김순덕씨 역시 신앙을 이어가는 최씨집안의 며느리답게 돈암동성당에서 레지오마리애 어머니회 등에서 소리나지 않는 열심으로 매일을 살아 곧 성인을 배출하게 될 집안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