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환경 11
식욕, 성욕, 소유욕이 육체적 생명의 유지와 연장에 중요한 요소라면, 명예욕은 정신적 생명의 연장에 중요한 요소로서 모든 사람 안에 들어 있는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이다. 만약 우리들 중 어느 한 사람이 명예욕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의 모습과 태도 그리고 삶의 형태는 어떠할까? 아마도 짐승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지거나 말거나 상관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어디서나, 어느 때나 아무 행동을 마음대로 할 것이다. 개는 자신의 명예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어디서나, 아무 때나 기본본능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명예를 존중하고 지켜가고자 하는 욕구를 천부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미리 점검하고 통제한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깨끗이 씻고, 단정한 옷을 입으며, 절도 있는 자세로 밖으로 나간다. 명예욕이 없다면, 그러한 수고를 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길에 나서고 아무 행동이나 마구 행하여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켜가지 못할 것이다.
명예욕은 우리를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매우 소중한 것이고, 다른 기본 본능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나가고 살아가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데에 매우 큰 관심을 두고 있고, 다른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켜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것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자신의 명예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은 그것에 사로잡혀 자유와 자아를 잃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어 생각과 행동이 밖으로만 떠돈다. 남이 나에게 칭찬을 하면 매우 기뻐하고 우쭐대기조차 하지만, 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이 크게 상처를 받는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남의 의견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참된 명예마저 놓치고 만다.
이런 사람은 또한 쉽게 완벽주의에 빠져들어 자신과 남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완벽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거나 칭찬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조금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행하려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할수록 그는 점점 더 분열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 그 누구도 완벽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명예를 잘 지켜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면서 마침내 우스꽝스런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게 된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선거 때에 후보로 나온 사람들의 다양한 말과 행동에서 보기도 한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 단체장 또는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과 시민의(?) 명예를 매우 존중하려는 사람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후보들의 우스꽝스런 주장과 행동에서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명예를 높이거나 지키기는 커녕 많은 수고를 하면서도 오히려 심하게 추락시키는 것을 본다.
우리의 명예를 잘 지켜나가는 데에는 현명한 판단력과 더불어 자신의 욕구를 통제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요청되고,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팽팽한 긴장을 견디어 나가는 인내력이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