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의회 이후 기독교의 토착화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배달민족의 문화권 내에 합류되지 못한채 고고하게 성곽만을 돌고있을 뿐이다. 기독교의 토착화란『다른종교의 신봉자들과 더불어 지혜와 사랑으로 대화하고 협조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생활을 증거하는 한편,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및 윤리적 선과 사회 내지 문화적 가치를 긍정, 지키며 발전하는 것이다』라고 제2차「바티깐」공의회의 교부들은 설명했다. 그래서 토착화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그 민족의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 가장 급선책임을 알 수 있다.
10여년이 지난 현재 뒤늦게나마 한국 가톨릭내 몇몇 성직자들은 토착화 문제를 놓고 우선 기독교가 유일종교라고 버텨오던 고답적인 자세를 가다듬고 타종교의 사상과 한국 민족적 특유사상을 살려가면서 이 민족에게 맞는 기독교 신앙이 표현과 토착화 작업을 착수하자는 모임이 열리고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들은 ①EㆍAㆍPㆍI(PHILIPPINES) ②INSTITUT CATECHETIQUE DE PARIS ③LUMEN VITAE(BELGIUM) 에서 토착화 문제를 연구한 20명의 성직자 수도자로 구성돼 1년에 2회씩 세미나를 열고 한국적 토착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73년 첫 모임을 31일부터「문화와 선교」을 주제로 2박3일간 교리신학원서 갖고 한국문화의 주류를 이어온 불교와 한국 샤마니즘을 분석 고찰했다.
다음은 이 세미나에서 불교와 샤마니즘에 대한 여러가지 강의 중 여동찬 신부의「기독교와 불교의 대화」강연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를 생각할때 기독교보다 오랜역사를 지닌 불교와 우리는 함께 생활하고 있음을 부인할수 없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불교를 신봉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중에 불교적 종교사상과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교에 있어서 불교의 사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사실상 불교와 기독교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지만 기독교나 불교의 신학자들이 천상천하의 유아독전적 역설을 버리고 불교를 이해하려면 선결문제는 기독교적인 신학체계와 사고방식을 떠나서 불교가 서있는 철학적 위치와 그 특수한 이론적 기반을 연구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두 종교의 상이점을 분석한다면 먼저 두 종교가 발생하고 발전한 지역과 사회ㆍ문화ㆍ정치적 배경과 환경이 달랐다. 또 발전과정을 보면 불교는 정치적 세력에 의한 투쟁을 멀리한 반면에 기독교는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모든 세력과 항상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이로인해 이미 기원을 달리한 양교는 세월의 흐름에 더욱 멀어져 대화나 교류라고 부를만한 일이 없었다.
기독교는 현세를 하느님 나라로 보고 이를 구제 성화시키려는 반면에, 불교는 세상을 우리들의 좋지못한 업(業)이 초래하는 결과로 보고 세상을 더럽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오탁악세(五濁惡世)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 안에서는 세상을 구제 성화시키려는 기독인들의 사상과 아주 가까운 사상을 볼수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불국토(佛國土) 곧 부처님의 깨끗한 땅(佛淨士)을 이룩해야 된다고 주장, 오탁악세를 구제 정화시키기 위해 자신을 바치는 보살들의 보살사상을 가르친다.
또한 두 종교는 궁극적 실재 진리본체를 관찰하는 관점이 다르다.
기독교의 궁극적 존재는「하느님」「천주님」으로 표현돼 우주만물을 창조하는 힘이며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능력이요 다름아닌 섭리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 힘과 능력은 신격을 지닌 인격과 흡사한 지력 자유의지를 갖추신「한분」이며 또한 그분은 성성(聖性)인 동시에 성화(聖化)에 있어서 모범이 된다.
그러나 불교인에겐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나 절대자 창조주가 인정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무(無)」로부터의 창조가 용납되지 않으며 그 시작에 대해 따져보았자 알 도리가 없는 영원한 변화의 연속이 불교 세계관인 것이다.
인과관계로 인해 중생들의 선악행에 의해 변천하는 무한한 세계가 있을뿐, 이 세상에는 실체, 실재란 없으며 각 사람의 자아까지도 여러가지 정신적 요소들의 일시화합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에게는 불교가 종교이며 사람을 해탈로 인도하는 실천도이지 그 가르침에 체계화된 철학적 학설을 기대할수 없듯이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철학적 신학적 체계화된 학설은 없다.
불교에서는 법(法ㆍ범어의DHARMS, 달마를 번역한 것)을 중요시 하고있다. 그 법은 영원한 이치다. 「법」은 일종의 질서를 말하지만 일종의 존재, 이 우주의 모든 존재를 초월한 존재로 인정된다.
진리본체인 법은 우주만물의 바탕으로 해석돼 부처는 그「법」의 인격적 출현으로 설명된다.
또한 불교는 신과 상대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영혼을거 부한다. 그들은 자아를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 네가지 정신요소로 대표되는 정신작용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무아설(無我說)을 역설, 집착 애착 욕망을 끊으라는 부처의 교훈을 검토하면 자아는 영혼과 다르다.
부처가 부인한 것은 타인들과 대립시켜 나를 나 자신에 애착케하는 욕망 즉 소아(小我)인 것이다. 불교교리로 보아 이 현상계는 무상이며 고(苦)며 무아(無我)며 부정(不淨)한 것으로 설명되고 열반의 특징은 상(常)ㆍ락(樂)ㆍ아(我)ㆍ정(淨)이다.
이상 위에서 많은 차이점을 다루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선입견 없이 관찰할 때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 있어서 불교는 인간의 진정한 노력을 보여줌을 알았다.
『내 이름으로 모이는 두 세 사람이 있는데에 나도 같이 있노라』고 하신 예수 말씀처럼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사람들은「그의 이름으로」모이는 사람들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