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오후 한강의 범람으로 수마가 휩쓸고 간 지역 중의 하나인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장항6리.
이곳에는 수마의 흉포함이 얼마나 대단하였으며 또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잔해들이 도처에 널려져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으며, 진입로는 물에 휩쓸려 움푹움푹 패이고 돌덩어리들이 산재해 차량통과를 방해했다.
주변의 넓은 논과 밭, 그리고 비닐하우스 등에는 지금쯤이면 황금빛으로 물든 곡식과 채소들이 수확의 결실을 기다려야 할 때임에도 풍요로운 결실대신 농작물들은 질척질척한 개흙으로 뒤범벅이 돼 쓰러져 버렸거나 비닐하우스 등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어 그야말로 「폐허」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길가로 몇채 안되는 집들이 나열해 있지만 온전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밖으로 내놓은 장롱 등 가재도구 및 옷가지, 전자제품 등에도 개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어 이 물품들이 다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마을 몇몇군데 목장에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소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자빠져 있었고、이들 죽은 소들은 물을 잔뜩 먹어 배가 터지기 일보 직전으로 불러 있었으며, 간간이 물먹어 죽은 소들의 썩은 내장이 터져 악취를 풍길까봐 배에 테이프가 얼기설기 붙여져 있는 소들도 보였다.
마을 여기저기에서는 절망과 비통에 가득찬 주민들이 군장병들과 함께 집안에 쌓인 칙칙한 개흙을 퍼내고 있었으며, 본격적인 집안청소 등은 물이 없어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보이는 주민 모두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으며, 개흙에 젖어버린 옷가지를 챙기는 아주머니들 역시 하염없는 표정으로 간간이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일순간에 알거지가 된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난민의 처지와 다름 없었고, 저녁이 되면 쌓여진 개흙으로 인해 정든 집에서 자지도 못하고 인근 학교로 가야하는 불쌍한 「이향민」의 모습이었다.
이 마을 주민 김영자(마리아ㆍ능곡본당신자ㆍ45세)씨는 이 같은 상황을 도저히 현실적인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지 『4번밖에 주일미사를 빠진 적이 없는데…하느님께 벌받았는가 보다』며 스스로 위로의 말을 던졌다.
이와 함께 김씨는 『모든 것이 원상태로 회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겠지요』라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언제쯤이나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을까…한강 제방이 터질 것 같으니 대피하라고 미리 알려만 주었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하고 아쉬움과 걱정을 털어놓았다. 김씨가 남편 박양구씨와 이 마을에와 살기 시작한 것은 18년전. 수해를 입기 전까지 김씨 가족은 소5마리로 시작한 젖소사육이 갖은 고생 끝에 30마리로 증가, 내년부터는 남부럽지 않은 농가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수해로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 돼버렸을 뿐만 아니라 당장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 처지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또 이 지역에 사는 신자들 피해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능곡본당(주임ㆍ이해욱 신부)과 일산본당(주임ㆍ이원용 신부)내 신자 2백78세대가 어려움을 처해있다.
이들 수해지역과 수재민에 대한 지원대책이 정부와 각 교구, 본당차원에서 활발히 전개되고는 있지만 수재민들 스스로의 자구책이 세워질 수 없는 처참한 현상황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지원은 태부족한 실정이다.
수해이후 능곡과 일산본당에도 타본당 및 수도원ㆍ개별 신자들이 수재의연금과 물품을 보내오고 있어 큰 위안이 되고는 있지만 이곳 사정을 볼때 너무도 미약한 형편이다.
현재 이 지역에는 생필품 및 가재도구와 복구 일손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며, 농산물이 뿌리째 뽑혀 유실됐기 때문에 금년 소득을 얻을 수 없어 앞으로 1년간을 버틸수 있는 여력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이다.
절망에 가득찬 마음과 힘없이 축 늘어진 신자 수재민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신자 개개인 및 각 단체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