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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국 성가회 소속 한인 윤덕향 수녀

전대섭 기자
입력일 2017-06-23 18:43:50 수정일 2017-06-23 18:43:50 발행일 1993-01-31 제 184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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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스러운 한국 신앙생활 인상적"
수녀회 입회 때부터 고국방문 꿈꿔
중국, 성당 운영상태 열악…시설부족으로 입회자수 줄여
임복만 신부 "영적지도자,,로 큰 영향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문명(발전)한거 보고 놀랐습니다. 서양생활이 무척 자유스럽고 개방적인데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지난 12월 15일 내한한 중국 성가회 소속 한인 수녀 윤덕향 수녀(마레아ㆍ28)는 생전 처음 고국을 방문한 감회를 이렇게 말했다.

외삼촌 박종혁(요셉ㆍ가좌동본당) 씨의 초청형식으로 이루어진 한국 방문은 윤 수녀가 88년 입회 때부터 꿈꾸었던 일.

『제가 조선인이기 때문에 서원하면 한인들이 많은 연변에서 활동할 것으로 기대했지요. 그런데 연변교회는 물질적인 도움 등 한국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서 다른 곳과는 분위기가 또 달라요. 그래서 그 전에 한국을 방문해 신자들의 생활이나 교회전례, 수도생활 등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첫 허원을 몇 달 앞두고 있던 91년 5월 윤 수녀는 북한 선교위원회 위원장 이동호 아빠스에게 이러한 뜻을 전달했다.

이동호 아빠스는 평소 친분이 있던 윤 수녀의 외삼촌 박종혁 씨와 연결, 방문을 성사시킨 것이다.

하지만 연변에서 활동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91년 9월 서원 후 바로 「사평 위생전문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하게 된 윤 수녀는 그 때문에 『당초 오랫동안 머물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려 했는데 방학을 이용, 잠시밖에 있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중국은 80년대 종교 자유가 허용된 이후 교회ㆍ신앙에 대한 관심이 계속 증대하고 있습니다. 영세자는 물론이고 신학교 수도원 지원자도 해마다 늘고 있고요. 그렇지만 아직도 성당을 짓거나 운영하는 데는 외부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신학교나 수녀원의 경우 지원자는 있지만 이들을 수용할 건물이 없어 입회자 수를 줄이거나 4∼5명씩 본당으로 보내 수련 때까지 교육시키는 비정상적인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윤 수녀는 최근 귀환한 전주교구 임복만 신부가 수녀원 입회 때까지 자신의 영적 지도신부였다고 말했다. 『한인신자 중에 누가 수녀원 간다는 소식을 듣고 신부님이 만나고 싶다고 하셨어요. 86년 10월인가 신부님이 계시던 「서란」에서 처음 뵈었지요. 그 후 몇차례 방문도 하고 편지도 주고받았습니다. 한번 가면 20일에서 한 달씩 지내며 영적으로 많은 지도를 해주셨습니다. 신부님이 제게 편지할 때는 신분이 밝혀질까봐 「알만한 사람」「바오로」 혹은 김계숙(임신부를 모시던 부부의 딸 이름)이라고 적어 보내셨지요』

윤 수녀는 임 신부가 당시 한인신자들 사이에서 「거룩하고 진실한 신부님」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에 머물면서 연례피정에 참가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낸 윤 수녀는『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나려면 자신을 비워야 한다』는데 큰 감명을 받았다면서 『이번 방문을 통해 내적으로 깊이 하느님을 만나겠다는 기대가 그대로 충족되어 모든 분들의 배려에 감사할 뿐』이라고 밝혔다.

윤 수녀는 2월 4일 한국을 떠난다.

전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