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미국 TV 드라마) 중에서 웬만한 극장 영화보다 더 화려하고 장중하며, 그 서사와 탄탄한 스토리가 일품인 ‘왕좌의 게임’(The Game of Thrones) 시즌4가 시작됐다. 매년 딱 10편만 제작해서 매주 한 번씩 방영하는 탓에 한 편 한 편을 아주 귀하게 여기면서 아껴서 본다. 이른바 ‘본방 사수’.
전 시즌인 시즌3의 마지막 회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주인공들로 알았던 인물들이 모조리 결혼식장에서 학살된다. 그들 말고도 주인공은 많다는 작가의 거만함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시즌4가 시작되고 3회, 흥미로운 것은 이 학살이 두고두고 욕을 먹는 것은 그 잔혹함이 아니라, 손님으로 초대한 사람들을 죽였다는 ‘도무지 예의가 없는 행동’이 그 이유라는 설명이다.
전쟁에서 남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은 자신의 생존을 지키는 일이기에 하나를 죽이든 열을 죽이든, 점잖게 죽이든 방정맞게 죽이든, 그것은 나름대로 정당화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젊은 남녀의 맺어짐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결혼식에 초대한 손님들을 해치는 일은 근본적인 신뢰와, 인간의 품격과 명예를 떨어뜨리는 예의가 없는 행동이었으며, 따라서 그 후안무치는 용납될 수 없는 부도덕이었던 것이다.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어느 사회든 그 사회에서 중히 여기는 도덕과 가치가 있다. 시공간의 차이로 인해, 그 사회와 시대에 고유한 사회적 통념에 의해 용인되는 도덕률과 그 도덕률의 발현으로서 각종 예법과 예의들이 정립돼 있다. 당대의 그 사회에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려면 그러한 전통적 예법들을 성실하게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지 못할 때, 버릇 없는 X이라거나, 예의가 없다는 타박을 받게 된다. 예법과 예의에서의 일탈이 아주 심할 때는 극도의 불명예가 주어지거나 법적인 구속력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사회든, 인간이 구성원으로 형성된 어떤 집단에서든 공통적으로 부여되는 예법과 예의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절대자에 대한 종교심과 함께 인간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존중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상이나 종교, 어떤 사회와 전통 속에서도 인간 생명의 고귀함과 존엄성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는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단 한 사람일지라도 우주와 바꿀 만큼의 값어치가 있음이 거부된 적이 없다. 한때 노예들은 파리 목숨처럼 여겨졌지만, 그것 역시 그들을 ‘인간’으로 치지 않고 ‘동물’처럼 여겼다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 뿐이다.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참극과 그 대응 과정에서 느껴지는 참담함은 바로 이러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올바르게 지켜지지 않았다는데 있다. 유가족들이 느끼는 분노 역시 우주와 맞바꿀만한 가치를 지닌 어린 생명들이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배신감에 있지는 않았을까? 승객들의 안전을 뒤로 하고 훌훌 털고 탈출한 선장, 안전 점검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관련 정부 부처, 숱한 대형사고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말 뿐으로 끝난 온갖 위기 대응 체제의 부실, 희생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언론 보도,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 하고 이념 논쟁을 조장하는 정부 관리들,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물색없는 네티즌들, 이 모두가 인간에 대한, 인간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상실한 탓이 아닐까?
도대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이것들을 어찌해야 할까?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나 있을까?